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약(景若), 호는 가포(稼圃). 아버지는 중국 연경에 내왕하던 상인인 임봉핵(林鳳翮)이다. 의주에서 출생하여 주로 그곳에서 활동하였다.
1796년(정조 20) 상업에 종사하기 시작하여, 이조판서 박종경(朴宗慶)의 정치적 권력을 배경삼아 우리나라 최초로 국경지방에서 인삼의 무역권을 독점하였다.
이때부터 천재적인 상업수완을 발휘하여 1821년(순조 21) 변무사(辨誣使)의 수행원으로 청나라에 갔을 때 북경(北京) 상인들의 불매동맹을 교묘한 방법으로 분쇄하고 원가의 수십배로 매각하는 등 막대한 재화를 벌었다.
1812년 홍경래(洪景來)의 난 때에는 방수장(防守將)으로 성을 지키는 데 공을 세웠으며, 변무사의 수행원으로 연경에 다녀온 뒤 오위장과 전라감영의 중군으로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기민구제 등의 자선사업으로 천거를 받아 1832년 곽산군수가 되고, 1834년 의주의 수재민을 구제한 공으로 이듬해 구성부사에 발탁되었으나, 비변사의 논척을 받자 사퇴하였다.
이후 빈민구제와 시주(詩酒)로 여생을 보냈다. 시를 잘 지었으며 일생 동안 지은 시를 추려 『적중일기(寂中日記)』 라 하였다. 그밖에 저서로 『가포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