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천(豊川). 충청북도 괴산 출생. 1936년에 일본에 건너가 중학교를 다닌 후 1940년 동경의 일본미술학교 유화과에 입학, 1942년에 졸업하였다(전쟁으로 6개월 단축). 미술 학도 때인 1940년 서울의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정물」이 입선되었다.
광복 후 1949년 제1회 국전(國展,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는 「가을 풍경」과 「만추(晩秋)」가 입선됐다. 6·25 전쟁으로 중단됐던 국전이 1953년 휴전과 함께 재개되자 해마다 입선과 특선을 거듭하였다. 1956년에는 실내의 소녀상을 사실적으로 그린 「화실」이 문교부장관상을 차지했고, 1957년 제6회 국전에서는 역시 실내의 소녀를 주제 삼은 풍부한 색채 구사의 「좌상」이 대통령상을 타며 크게 각광을 받았다.
1958년과 1959년에도 특선에 오름으로써 추천 작가가 되었고, 1963년부터는 초대 작가로 심사 위원이 되기도 하며 대표적인 국전 작가로 활동하였다. 그러는 한편, 1955년의 대한미술협회전에서는 불상을 그린 유화 작품이 문교부장관상을 차지했다. 1961년에 광주의 조선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1974년에 정년 퇴임할 때까지 14년간 광주에 거주하며 두드러진 서정적 색채 화가로서의 작가상을 빛냈다.
그러나 그의 작품 발표와 미술계 활약은 줄곧 서울과 직결되어 있었다. 조선대학교에서는 선임 교수였던 오지호(吳之湖)처럼 색채 존중의 기법을 학생들에게 지도하여 자연주의 성향의 호남 서양화풍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개인적인 작품으로는 실내의 여인상, 꽃과 소녀, 꽃 중심의 정물, 계절색의 자연 풍경, 항구 또는 어촌과 바다의 정경 등을 주제 삼으며 자연애의 서정적 시각과 색채적 표현 감정을 선명하게 드러낸 필치의 유화 창조가 두드러지게 이루어졌다. 그 색상의 작품들은 자연적인 주제성을 넘은 회화적 자율성의 내면을 구현시킨 것이었다.
1980년대 이후에는 그 성향이 더욱 자유롭게 추구되었고, 말년에는 표현을 최대한으로 단순화시킨 붓놀림과 명쾌한 선택의 색상으로 자연미의 생명감과 그 내면의 아름다움을 최대한으로 강조하려고 하였다. 특출했던 색채적 표현주의 화가로서 각별한 평가와 많은 애호가들의 인기를 누렸으며, 그에 상응한 많은 역작을 남겼다.
화단 활동으로는 1958년의 목우회(木友會) 창립 회원, 1982년 이후에는 미술 단체 구상전(具象展) 가담 및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문예상 미술본상(대통령상, 1967년), 전라남도문화상(1970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미술 부문 본상(대통령상, 1986년), 서울시문화상(1993년), 오지호미술상(1993년) 등을 수상하였고, 저서로는 『꽃과 태양(太陽)』(경미출판사, 1980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