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채극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고려공산동맹 중앙집행위원, 조선노농총동맹 집행위원, 사회주의자동맹 발기인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이칭
이명
장채극(張採極), 왕자명(王子明)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8년(고종 35) 8월 26일
사망 연도
1972년 7월 11일
출생지
함경북도 부령
대표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1993)
관련 사건
고국민대회 사건
내용 요약

장채극은 일제강점기 고려공산동맹 중앙집행위원, 조선노농총동맹 집행위원, 사회주의자동맹 발기인 등을 역임한 서울청년회계의 사회주의운동가이다. 3·1운동 당시 보성고등보통학교 4학년으로 국민대회사건을 일으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사회주의운동에 투신하여 서울청년회의 핵심 인물로 활약하였으며, 신간회 청진지회 집행위원을 맡았다.

정의
일제강점기 고려공산동맹 중앙집행위원, 조선노농총동맹 집행위원, 사회주의자동맹 발기인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인적 사항

장채극(張彩極)은 1897년 8월 26일 함경북도 부령에서 태어났으며, 이명은 왕자명(王子明)이다.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와 일본에서 공부하였다. 1972년 7월 11일에 사망하였다.

주요 활동

1919년 3 · 1운동 당시 보성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 서울의 독립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 주1 사건’으로 김사국(金思國)과 함께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다. 3월 4일 서울 배재고교 기숙사에서 학생 대표인 한위건(韓偉健) 등과 함께 「독립신문」을 인쇄하여 각 학교 배포 담당자에게 전달하였다. 4월 22일 밤에 ‘선포문’과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대회취지서’ 약 6,000여 매와 간판 등의 선전물을 이철 등에게 전달하였으며, 다음 날인 23일에는 집합 장소인 남대문 앞에서 시위 군중에게 선전물을 나누어주고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검거되었다.

1922년 10월 서울에서 김사국‧ 이영(李英) 등과 공산주의그룹을 결성하였으며, 같은 해 12월 말에는 이 그룹의 합법 청년 단체인 서울청년회에 가입하였다. 장채극은 서울파 공산주의 그룹의 핵심 인물로 활동하였다. 1923년 2월 서울파의 고려공산동맹 결성에 참여하고 중앙집행위원이 되었다. 1923년 8월 「출판법」 위반으로 종로경찰서에 검거되었다.

1924년 4월 조선청년총동맹의 창립대회에 참가해 전형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같은 달 조선노농총동맹 창립대회에서는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9월에는 함경북도에서 고려공산청년동맹 조직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10월에는 김기도(金基道)‧허염(許廉)‧김창률(金昌律) 등과 함경북도 청진(淸津)에서 열린 북선연락지방물산공진회(北鮮聯絡地方物産共進會) 대회장을 폭파하여 민심을 교란하고 선전 선동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은 사전에 발각되어 물거품이 되었다. 이 일로 장채극 등은 검거되었지만, 불기소처분으로 끝났다. 11월에는 전조선노동교육자대회 준비위원, 12월에는 사회주의자동맹의 집행위원이 되었다.

1925년 4월에는 서울파 조선사회운동자동맹의 발기대회에서 선전부 상무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 가을 청진노동회 상무, 신간회 청진지회 집행위원, 『동아일보』 청진지국장이 되었다. 1926년 2월에는 조선사회단체중앙협의회 설립에 참여하였다. 1930년대 중반에 검거되었으나, 이듬해 무죄 방면되었다.

상훈과 추모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조한성, 『만세열전: 3·1운동의 기획자들·전달자들·실행자들』(생각정원, 2019)
전명혁, 『1920년대 한국사회주의 운동연구』(선인, 2006)
『부천독립운동사』(부천시광복회, 2002)

논문

이준식, 「조선공산당 성립과 활동」(『한국독립운동의 역사』 43,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주석
주1

1919년 1월 21일 고종이 일본인의 배후 조종으로 독살된 직후에 국민대회를 소집하고자 민중동원을 위해 제작 반포된 격문.    바로가기

집필자
예지숙(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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