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4.63m. 원소재지는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복성리로, 1994년에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옮겨 세웠다. 옮길 당시 탑명(塔銘)과 형지기(形止記: 조사한 전말을 기록해놓은 책)가 발견, 조사되어 이 석탑의 확실한 건립 연대를 알 수 있다.
2층 기단 위에 5층 탑신을 건조하여 전형적인 일반형에 속한다. 하층 기단(下層基壇)에는 탱주(撑柱: 받침기둥)를 두지 않고 각 면에 3구씩의 안상(眼象)을 조각하였는데, 지선(地線)에서 내부를 향하여 꽃모양의 무늬가 솟아오르고 있다.
상층 기단에는 각 면에 탱주 1주씩을 모각하였고, 상하기단의 갑석(甲石) 상면은 약간의 경사를 이루었으며, 상면의 굄대 모각은 1단뿐으로 특별한 예에 속한다. 탑신부는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이 각각 1석으로 되었고, 초층 탑신 정면에는 호형(戶形) 안에 자물쇠모양이 새겨져 있으며, 2층 이상은 급격히 감축되었다.
옥개석은 너비가 좁고 두꺼우며, 추녀 끝은 위로 들려 있어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옥개받침은 4단으로 줄었고 추녀 밑으로 낙수홈이 새겨져 있다. 5층 옥개석이 없어져서 5층 탑신 위에 노반(露盤: 탑의 최상부 옥개석 위에 놓아 복발·앙화·상륜 등을 받치는 장식)만이 남아 있고, 그 밖의 상륜부(相輪部)는 결실되었다.
2층 이상의 탑신은 감축률이 적고, 옥개석이 좁고 두꺼워서 고준(高峻)한 감을 주나, 좋은 질의 석재인 덕분에 석탑 표면에 손상이 없으며, 안상의 조각 또한 세부에 이르기까지 깨끗하고 아름답게 조각되었다. 상층 기단 면석에 자경(字徑) 4㎝인 해서체(楷書體)의 탑명(塔銘)이 새겨져 있는데, 끝에 태평 11년(太平十一年)의 연호 및 연대가 있다.
또한, 옮길 당시에 탑 안에서, “太平十一年歲次辛未正月四日高麗國尙州界知京山府事任若木郡內巽方在淨兜寺五層石塔造成形止記(태평11년세차신미정월4일고려국상주계지경산부사임약목군내손방재정도사5층석탑조성형지기)”라 쓰여진 백지묵서(白紙墨書)의 형지기와 아울러 녹유사리병(綠釉舍利甁)·동합(銅盒) 등의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특히, 형지기는 건탑의 인연(因緣)·시납(施納), 공사의 사실 등을 기재하였고, 글 문투에는 이두식이 많이 사용되고 있어 탑 자체에 관해서는 물론이지만 이두 연구에도 좋은 자료이다. 여기에 보이는 ‘태평 11년’은 1031년(현종 22)에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