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군섭(君燮), 호는 수암(守菴). 영천 출신. 일찍이 여러 동지들과 자양동에 들어가 과거공부를 폐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학덕이 높은 사람들과 교유하여 그의 학행이 조정에까지 알려져 1606년(선조 39) 왕자의 사부(師傅)를 제수받았고, 1611년(광해군 3) 세마(洗馬)·시직(侍直)을 제수받았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라를 걱정하고 임금을 향한 충성스러운 마음은 끊이지 않았다. 인의왕후(仁懿王后)와 선조의 상 때에는 모두 기제(朞制)를 입었으며, 친부모상을 당한 것과 다름이 없이 행하였다. 나라에 상을 당하였을 때에는 반드시 채식을 하였다. 몸가짐이 독실하므로 사람들은 그를 어려워하였다. 영천의 입암서원(立巖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