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심(正心)은 15세기에 태어나 활동한 선사(禪師)로 정심(淨心)이라고도 한다. 성은 최씨(崔氏), 본관은 금산(金山)이다. 법호는 벽계(碧溪)이고, 등계(登階)로도 일컬어졌으며 벽송 지엄(碧松智嚴, 1464∼1534)에게 선법을 전해 주었다.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은 조사인 벽송 지엄의 행적을 쓰면서 “연희(衍熙) 교사(敎師)로부터 원돈(圓頓)의 교의를, 정심(正心) 선사에게서 서쪽에서 온 비밀스러운 가르침을 배우고 깨쳤다.”고 기술하였다. 지엄은 정심에게 선법을 전수 받았고, 간화선(看話禪)을 주창한 송의 대혜 종고(大慧宗杲)와 원의 간화선승 고봉 원묘(高峰原妙)의 『어록』을 보고 의심을 깨뜨리고 깨우침을 얻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지엄에게 선을 전해 준 정심 또한 임제종(臨濟宗) 간화선의 법풍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휴정에게 심인을 전수 받은 정관 일선(靜觀一禪)은 백하 선운(白霞禪雲)에게 법화(法華) 교학을 이수했는데, 선운은 『법화경』에 정통한 정련 법준(淨蓮法俊)의 제자였고, 법준은 등계 정심(登階正心)에게 교학을 배웠다. 이처럼 정심은 선뿐 아니라 교학에도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17세기 초에 사명(四溟) 문파가 의뢰해 작성된 허균(許筠)의 법통설에는 고려 초 도봉 영소(道峯靈炤)의 법안종(法眼宗) 법맥과 임제종, 조동종(曹洞宗)의 가풍, 고려 말 나옹 혜근(普濟惠勤) 이후 남봉 수능(南峰修能)-등계 정심(登階正心)-벽송 지엄(碧松智嚴)-부용 영관(芙蓉靈觀)-청허 휴정(淸虛休靜)으로 이어진 법맥이 기술되어 있다. 그 후, 편양 언기(鞭羊彦機)가 제기한 법통설에서는 태고 보우(太古普愚) 이후 환암 혼수(幻庵混修)- 구곡 각운(龜谷覺雲)-벽계 정심(碧溪淨心)-벽송 지엄(碧松智嚴)-부용 영관(芙蓉靈觀)-청허 휴정(淸虛休靜)과 부휴 선수(浮休善修)로 임제종의 정통 법맥이 이어졌다고 본다. 여기에 나오는 벽계 정심이 바로 앞의 등계 정심이며, 정심은 지엄의 스승으로서 법통의 적전 계보에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764년에 편찬된 『해동불조원류(海東佛祖源流)』에서는 “벽계 정심은 구곡 각운을 멀리 이었고, 다시 명나라에 들어가 임제종 총통 화상(摠統和尙)의 법을 전해 왔다. 선은 지엄에게, 교는 정련에게 전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정심이 명에 가서 임제 법맥을 전수해 왔다는 기록은 다른 자료에서는 전혀 확인되지 않아 신빙성이 떨어진다. 고려 공양왕이 물러난 후, 정심은 승려 사태로 머리를 기르고 처자식을 두었으며, 황악산(黃岳山)에 들어가 고자동(古紫洞) 물한리(物罕里)에 은거하다 자취를 감추었다. 조선의 억불 정책으로 인해 그가 결국 환속했다고 보고 있다. 조선시대 불교 측 자료에서는 승려 사태를 폐군인 연산군 때의 일로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