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주(竹州) 장씨(張氏). 법호는 편양(鞭羊). 법명은 언기(彦機). 경기도 안성 출신. 어머니는 이씨(李氏)이다. 서산대사 문하 편양파(鞭羊派)의 개조(開祖)이다.
11세에 출가하여 휴정(休靜)의 제자인 현빈(玄賓)에게 계(戒)를 받은 뒤, 금강산에서 교학과 함께 참선을 했다. 임진왜란이 끝날 무렵, 묘향산휴정의 밑에서 선 수행을 했고, 이후 휴정의 법(法)을 이어받았다. 그 뒤 남쪽으로 돌아다니면서 고승들에게 깨달음을 점검받았으며, 금강산 천덕사(天德寺), 구룡산 대승사(大乘寺), 묘향산 천수암(天授庵) 등에서 선과 교를 함께 가르쳐 명성을 떨쳤다.
숯장수와 물장수를 하면서 시정(市井)에 나와 중생을 교화하였고, 시문(詩文)이나 선교(禪敎)에 대한 법문은 간결하고 쉬웠다. 묘향산 내원암(內院庵)에서 입적할 때까지 제자가 수백 명에 이르렀는데, 의심(義諶)을 수제자로 하여 석민(釋敏)·홍변(弘辯)·계진(契眞)·의천(義天)·혜상(惠常)·천신(天信) 등은 그 중 뛰어난 제자들이다.
그는 교와 선을 별문(別門)으로 보지 않는 휴정의 사상을 이어받았으며, 모든 불경은 근기에 따라 설한 것이라고 하여 일승·이승·삼승이나, 대승·소승의 본질적인 차이를 부정했다.
그의 교판(敎判)에 따르면, 화엄은 상근기의 보살이 단번에 깨달음에 이를 수 있음을 설한 것이고, 아함은 성문과 연각을 위하여 설한 것이며, 방등은 보살을 위하여 육바라밀을 설한 것이고, 법화는 성문·연각·보살에게 구경의 대도(大道)를 설한 것이다. 그리고 이상의 네 가지 교의 근본 원리가 곧 묘심(妙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선(禪)은 교외별전(敎外別傳)으로서 단적으로 부처의 마음을 전한 것인데, 이것은 최상의 근기를 가진 사람만이 비로소 들어갈 수 있는 법이라고 했다. 그런데 선문(禪門)도 임시로 교의 방법에 의해 하근기의 사람을 포섭한다고 하고, 의리선·조사선·격외선의 구분 또한 수행자의 근기에 따른 주관적인 차별일 뿐이라고 하였다.
그의 사상은 대략 일곱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경절문(徑截門)은 교외별전이다. 둘째, 경전은 부처님이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설한 것이다. 셋째, 모든 교설은 일법(一法)으로 귀일(歸一)한다. 넷째, 이 일법은 중생들의 자성(自性)이자 부처이다. 다섯째, 자성을 밝히기 위한 수단인 경론(經論)으로 분별심이나 차별심을 일으키면 깨달음에 도달할 수 없다.
여섯째, 이 자성을 깨닫는 실천 방법은 공안을 통한 경절문, 자성의 관조를 통한 원돈문(圓頓門), 염불을 통한 염불문이 있다. 일곱째, 이 셋은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자성을 밝히기 위한 것이며, 결과적인 경지는 차별이 없다.
저서로는 『편양당집』 2권을 남겼는데, 상권에 실린 「선교원류심검설(禪敎源流尋劍說)」은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글이다.
문도들이 화장한 후, 영골을 묘향산과 금강산에 석종(石鐘)을 세워 안치하였고, 또 두 곳에 비를 세웠는데 금강산의 비문은 이명한(李明漢)이, 묘향산의 비문은 이경석(李景奭)이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