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유씨(柳氏). 호는 풍담(楓潭). 경기도 김포 출신. 14세에 출가하여 묘향산 성순(性淳)의 문하에서 시봉(侍奉)하다가 득도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환속하라는 아버지의 권유를 뿌리치고 천관산에 있는 원철(圓澈)을 찾아가서 『서장(書狀)』·『도서(都序)』·『절요(節要)』·『선요(禪要)』 등 사집(四集)을 배워 대의를 파악하였다.
다시 묘향산으로 들어가 언기(彦機)의 문하에서 선을 닦아 묘지(妙旨)를 깨치고 법맥을 이었다. 그 뒤 남방으로 내려가 기암(奇巖)·소요(逍遙)·호연(浩然)·벽암(碧巖) 등을 방문하여 선지(禪旨)를 검증받고 금강산에 머무르면서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1644년(인조 22) 법사인 언기가 병환을 치르자 묘향산으로 가서 병시중을 들었다.
언기는 『화엄경』·『원각경(圓覺經)』 등의 제소(諸疏)가 방치되어 잔결(殘缺)된 부분이 많은 것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정리하다가 병이 든 것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이들을 완성시키도록 하였다. 그는 백수십 권에 이르는 『화엄경』·『원각경』 등의 제소를 면밀하게 살펴 6년 만에 그 잘못을 바로잡아 음석(音釋)을 지어 여러 총림(叢林)에 보내었다.
1665년 3월 금강산 정양사(正陽寺)에서 입적하였는데 안색은 살아 있을 때와 다름이 없었다. 제자는 500명이 넘었고, 이름이 알려진 70명의 제자 중 정원(淨源)·설재(雪齋)·도안(道安)·명찰(明察)·자징(自澄)·도정(道正)·법징(法澄)·장륙(莊六) 등은 종지(宗旨)를 선양하여 각각 일파를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