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5.6m. 현재의 위치가 원래의 위치로 추정된다. 석탑 주변에는 ‘용명사(龍明寺)’라고 불렸던 절이 있었던 듯한데, 민가가 흩어져 있어서 사역(寺域)의 규모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마을의 옛이름이 명장리(明莊里)였고, 이전에 석탑의 이름을 ‘명장리 삼층석탑’이라고 불렀으므로, 용명사라는 절 이름 역시 확실한 것은 아니다. 또한 이 절터를 ‘명장사(明莊寺) 터’라고도 부르지만, 역시 확실하지 않다.
석탑은 2층의 받침돌 위에 3층의 탑신부(塔身部)를 올린 일반적인 석탑으로, 받침 부분에 약간의 손상이 있을 뿐, 거의 완전한 상태이다. 받침돌은 여러 장의 돌로 구성되었으며, 위아래 받침돌 모두 2개의 모서리 기둥과 가운데 기둥이 본떠 새겨져 있다. 아래층 받침돌은 한 변의 너비가 3.49m인 네모난 모습인데, 덮개돌의 굄은 둥글고 각진 2단이다. 이에 비해 윗층 받침돌의 덮개돌 굄은 네모난 2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탑신부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구성되었다. 지붕돌의 층급 받침은 5단으로, 신라 석탑의 전성기 때 양식이 그대로 반영되었지만, 연도는 다소 늦은 듯하다. 지붕돌 윗면의 몸돌 굄은 네모난 2단이고, 낙수면은 곡선이 제법 강한 편이다. 상륜부(相輪部)는 복발·앙화 등의 머리장식을 받치는 3층 지붕돌 위의 노반(露盤)만 남아 있고, 그 이상은 없어졌다.
이 석탑은 1943년에 해체, 수리되었는데, 당시에 탑신부에서 불경(佛經)이 발견되었다고 전하지만, 현재 그 소장처는 알 수 없다. 다만 불경은 통일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 이루어진 사경(寫經)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석탑 안에는 사리장엄(舍利莊嚴)이 봉안되었을 것인데, 장엄구의 행방 역시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이 석탑은 각 부재의 결구(結構) 수법이나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성행한 원당(願堂)과 같은 성격의 사찰에 건립된 석탑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