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4.07m. 석탑은 남사저수지 서남쪽의 깊은 골짜기 안에 있다. 주변은 절터로 보이는데, 절의 이름이나 사역(寺域)의 규모, 금당의 위치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산지의 협곡을 이용하여 전각을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1975년에 보수·복원되었는데, 대체로 온전한 상태여서, 윗층 받침돌의 북쪽 면석만 새로 보완하였다.
석탑은 2층의 받침돌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린 일반적인 신라 석탑이다. 아래층 받침돌은 하나의 돌에 하대석(下臺石), 면석, 덮개돌을 함께 새긴 돌 4장을 놓아 조립하였는데, 각 면석에는 모서리 기둥과 1개의 가운데 기둥을 조각하였다. 아래층 받침돌의 굄은 둥글고 각진 2단으로 이루어져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모습을 갖추었다. 윗층 받침돌의 면석은 4장의 널돌로 짜였으며, 각 면마다 모서리 기둥과 1개의 가운데 기둥을 새겨놓았다. 2장의 널돌로 구성된 덮개돌에는 밑면에 쇠시리인 부연(副椽)이 있고, 윗면에는 아래층 덮개돌과 같은 모습의 2단 굄이 있다.
탑신부(塔身部)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의 돌로 이루어졌다. 몸돌에는 여느 석탑처럼 모서리 기둥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밑면 받침이 4단이고, 윗면의 굄은 각진 2단이며, 네 귀퉁이의 반전(反轉)은 심한 편이다. 머리장식인 상륜부(相輪部)에는 노반(露盤)만 남아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없어졌다.
이 석탑은 받침돌에 비해서 몸돌과 지붕돌이 다소 가냘프게 보인다. 각 세부의 양식과 수법으로 보아, 건립 시기는 9세기 말로 추정된다. 신라 수도 경주의 중심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였으므로, 석탑이 있었던 절은 귀족 세력들이 기복을 위해 건립했던 원찰(願刹)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