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위치한다. 1972년 5월 4일에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미용(美鏞)이고, 호는 다산(茶山)·여유당(與猶堂)이다. 1789년(정조 13) 문과에 급제한 후 정조(正祖)의 지우(知遇)를 받아 여러 국책 사업에 기용되었다. 1801년(순조 1) 신유박해(辛酉迫害)로 18년간 유배를 시작하면서 유배지에서 학문에 전념하여 50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봉분은 단분이며, 숙부인(淑夫人) 풍산홍씨(豐山洪氏)와의 합장묘(合葬墓)이다. 묘소에는 묘비·상석(床石)·향로석(香爐石)·망주석(望柱石) 1쌍이 설치되었고, 상석 밑에 좌우로 석단이 있어 봉분과 앞 공간을 구분하였다. 나중에 곡장(曲墻: 무덤 뒤에 둘러싼 작은 담)과 묘비 1기가 추가되었다. 묘비는 팔작지붕형 가첨석(加檐石), 오석제(烏石製) 비신(碑身), 기대(基臺)로 구성된 전형적인 조선 후기의 양식이다.
또한 능내리 마현 부락에는 정약용의 생가인 여유당(與猶堂) 있다. 묘역 주변은 공원처럼 다듬어져 있어 근세 조선의 선구자였던 그를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