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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漢拏山)

자연지리지명

 제주도의 중앙에 있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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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중앙에 있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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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1,947.269m. 북위 40° 이남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한라산은 예로부터 부악(釜嶽)·원산(圓山)·진산(鎭山)·선산(仙山)·두무악(頭無嶽)·영주산瀛洲山)·부라산(浮羅山)·혈망봉(穴望峰)·여장군(女將軍) 등의 많은 이름으로 불려 왔으며, 전설상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이다.
한라산이라는 이름에서 한(漢)은 은하수(銀河水)를 뜻하며, 라(拏)는 맞당길나[相牽引] 혹은 잡을나[捕]로서, 산이 높으므로 산정에 서면 은하수를 잡아당길 수 있다는 뜻이다.
예로부터 산 정상에 오르면 멀리 남쪽 하늘에 있는 노인성(老人星)을 볼 수 있었으며, 이 별을 본 사람은 장수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진산이란 보통 도읍의 뒤에 위치하여 그 지방을 편안하게 지켜주는 의미를 가진다. 한라산을 진산이라고 불렀던 까닭은 한반도로 밀려오는 남태평양의 큰 바람을 한라산이 막아주어 한반도의 안녕을 지켜 주기 때문이다.
두무악이란 머리가 없는 산을 의미하는데,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한 사냥꾼이 산에서 사냥을 하다가 잘못하여 활끝으로 천제(天帝)의 배꼽을 건드렸는데, 이에 화가 난 천제가 한라산 꼭대기를 뽑아 멀리 던져 버렸다고 한다. 이 산정부가 던져진 곳은 지금의 산방산(山房山)이며, 뽑혀서 움푹 팬 곳은 백록담(白鹿潭)이 되었다고 한다.
원산이라는 이름은 산의 중앙이 제일 높아 무지개 모양으로 둥글고, 사방 주위가 아래로 차차 낮아져 원뿔 모양을 이루기 때문에 붙여졌다. 맑은 날 해남이나 진도에서 한라산을 바라보면 산 전체가 완만한 원뿔로 보인다.
영주산이란 중국의 『사기(史記)』에서 유래한다. 바다 가운데에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 등 삼신산이 있는데, 그곳에는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약초가 있어 신선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진시황(秦始皇)은 서기 전 200년경 역사(力士) 서불(徐市)에게 그 약초를 구해 오도록 명하였다고 한다.
부악이란 산정의 깊고 넓은 분화구가 연못으로 되어 있어 마치 솥[釜]에 물을 담아 놓은 것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연못은 성록(聖鹿)인 흰 사슴이 물을 마시는 곳이라 하여 백록담이라고 하였다. 『세조실록』에 의하면 1464년(세조 10) 2월에 제주에서 흰 사슴을 헌납하였다[濟州獻白鹿]고 기록되어 있다.
정조 연간에 간행된 읍지에 의하면, 한라산을 등산하는 데는 대정현 쪽으로 험한 산길이 하나 있어서 사람들이 이를 따라 수목 사이를 헤치며 올라가는데, 위에서 소란을 피우면 곧 운무가 사방을 덮어버려 지척을 분간하지 못하였다 한다.
또한, 5월에도 눈이 남아 있어 얼음이 필요하면 산에 올라가서 가죽 부대로 운반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녹담만설(鹿潭晩雪)이라는 것으로 제주 10경 중의 하나이다.
한라산은 신령스러운 산이라 하여 조정에서 해마다 산정에서 국태민안을 비는 산제(山祭)를 지냈는데, 산제를 지내러 갔던 백성들이 동사하기도 하였다. 이에 1469년(예종 1) 목사 이약동(李約東)은 지금의 산천단(山泉壇)에 산신묘를 세우고 이곳에서 산제를 지내도록 하여 그 석단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한라산은 제주도의 전역을 지배하며, 동심원상의 등고선을 나타내어 순상화산(楯狀火山)에 속한다. 한라산은 약 360개의 측화산(側火山)과 정상부의 백록담, 해안지대의 폭포와 주상절리(柱狀節理)주 01) 등의 화산지형, 난대성기후의 희귀식물 및 고도에 따른 식생대(植生帶)의 변화 등 남국적(南國的)인 정서를 짙게 풍겨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전할 수 있는 자원을 갖추고 있다. 그리하여 1970년에 한라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1) 지질·지형
신생대 제3기 말에서 제4기에 이르는 5기(期)의 화산분출로 형성되었다. 제1기 화산분출은 기저현무암과 서귀포층을 형성하여 해저 기반을 이루며, 제2기 화산분출은 표선리 현무암과 서귀포 조면암 및 중문 조면암을 형성하여 육상지형을 이룬다.
제3기 분출기는 열로분출(列爐噴出)에서 중심분출 형태로 전환되는 시기로서, 제주 현무암·하효리 현무암·법정리 조면암 등이 분출하여 한라산 화산체(火山體)가 950m에 달하였다. 제4기 화산분출은 고산 지대에 집중되어 시흥리현무암·성판악현무암·한라산현무암 등을 형성하였다.
제5기 분출기는 백록담 화산폭발로 백록담 현무암이 분출하였고 고산 지대에는 300여 개의 분석구(噴石丘)가 형성되었다.
한라산 일대의 안산암(安山岩)에는 철분이 풍부한 감람석(橄欖石)이 많고, 현무암에는 알칼리 성분이 풍부하다. 이처럼 한라산체는 알칼리감람석현무암질 마그마의 분출로 이루어져 내태평양 지역에 산재하는 화산도와 비슷하다.
한라산의 사면은 고도와 경사에 따라 네 부분으로 구분된다. 고도 200m 이하 해안저지대는 경사도 4° 이하로 완만하며, 고도 200∼600m 사면은 중산간지대이고, 600∼1, 200m의 산악지대는 경사도 10∼20°로 다소 가파르며, 1,200m 이상의 정상부는 경사도 20°이상의 고산 지대를 이룬다. 한라산의 사면에는 약 360개의 측화산이 발달하였다.
제2기 분출기에 형성된 조면암질 기생화산은 산방산·화순월라봉(和順月羅峰)·군산(軍山) 등으로 동일 구조선상에 분포하며, 수중파쇄암 기생화산은 성산봉(城山峰)·두산봉(斗山峰)·고산봉(高山峰) 등으로 해중분출지형이다.
기생화산의 60%를 차지하는 분석구는 제5기 분출기에 형성되었으며 200m 이상의 사면에 분포한다. 하천은 정상부를 중심으로 방사상 형태를 나타내며, 기반암이 불투수층인 경우 조밀하다.
하천은 대체로 직류하며, 사면의 경사가 급하여 침식력이 크기 때문에 계곡이 깊고, 지반의 융기 및 해수면 변동과 관련하여 강정천(江汀川)·창고천(倉庫川) 양안에는 하안단구가 발달하였다.
경사가 완만한 용암대지(熔岩臺地) 지역에는 용암동굴이 많이 분포한다. 만장굴(萬丈窟)은 길이 1만 3268m로 세계에서 가장 긴 동굴이며, 빌레못동굴은 길이 1만 1748m로 단일동굴로서는 세계 최장(最長)이다.
용암동굴은 대체로 직선적·수평적이며, 용암동굴선반·용암종유·새끼구조용암 등의 미지형이 발달하였고, 2, 3층의 구조를 나타낸다.
토양은 화산재·화산모래·화산력 등을 모재로 한 화산회토로서, 유기물과의 결합력이 큰 치양토(埴壤土)가 대부분이다. 이 토양은 유기물 함량과 염기 치환 용량은 높으나 염기의 흡착력이 약하고 배수가 양호하여 용탈이 심하기 때문에 작물 생장에 양호한 편은 아니다.
(2) 기후
중위도 난대성에 속하고 해양성이 강하며 남북의 지역 차가 심하다. 연평균기온은 15.5℃이나 남사면이 약 0.7℃ 높다. 연강수량은 북사면이 1,440㎜, 남사면이 1,718㎜로 우리나라 최다우 지역에 속하는데, 계절별로는 겨울철에는 북 사면이, 여름철에는 남사면이 강수가 많다.
이처럼 해안저지에서는 아열대성기후의 특성이 나타나지만 고도가 증가함에 따라 기온이 하강하여 고도별 기후대의 차이가 뚜렷하다.
(3) 생태
식물상은 300여 종의 특산 및 희귀식물을 포함하여 1,800여 종의 육상식물이 한라산의 높이에 따라 다양하게 분포한다. 식물분포 구계상 중일식물구계(中日植物區系) 중 한일난대아계(韓日暖帶亞系)에 속하며, 표시종(標示種)은 붉가시나무·구실잣밤나무·동백나무 등의 상록활엽수(常綠闊葉樹)이다.
이 구역에는 287종의 수목이 있는데 이 중에서 31%(89종)가 상록수이며, 그 중 62%는 난대성으로 해안에 가까운 계곡과 평지 및 산록지대에서 자생한다. 한라산 보존구역의 중심이 되는 한라산의 식물군집은 고도에 따른 수직적 분포대의 구분이 현저하다. 이 산은 섬에 있어 다른 산들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았기 때문에 내륙의 산들에 비하여 그 환경이 비교적 단순하다.
이 산의 식물군집은 무기적 자연환경과 지질사적 요소 및 인위적인 요소에 의하여 성립된 것이다. 편의상 우점종(優占種)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상록활엽수림은 북쪽에서는 해안선에서 고도 600m까지, 남쪽에서는 700∼1,100m에까지 이른다. 표시종은 남오미자·참식나무·사스레피나무·굴거리나무·좀굴거리나무 등이다.
난대상록수림은 녹나무속·가마귀쪽나무속·후박나무속·벌꿀속·모밀잣밤나무속·가시나무아속·모람속·돈나무속·다정큼나무속·굴거리나무속·호랑가시나무속·보리수과·담팔수속·동백나무속·사스레피나무속·후피향나무속·산유자나무속·황칠나무속·식나무속·쥐똥나무속·마삭줄속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난대성 상록활엽수의 80%는 일본과의 공통종이며, 고유종은 8%에 불과하다.
한라산 중복(中腹)의 온대림은 한반도에서와 같이 서나무·졸참나무·단풍나무·산벚나무 등으로 구성된다. 그 윗부분에는 물참나무의 순림(純林)이 발달하였으며, 더 높은 곳의 한대림은 구상나무·고채목 등이 대표적인 종이다. 정상부에는 떡버들·털진달래·눈향나무·시로미·설앵초·담매·들꽃나무 등이 자란다.
이와 같이 한라산에는 난대·온대·한대의 식물대가 분포하는데, 그 한계선은 남쪽이 북쪽보다 높다. 이는 해류의 영향에 따른 기온·강수량·설선(雪線)의 차이 및 계절풍의 영향 등 주로 기상 조건의 차이 때문이다.
특산 식물로는 바늘엉겅퀴·한라구절초·좀민들레·한라송이풀·애기솔나물·두메대극·섬바위강대·게주황기·제주달구지풀·솔비나무·제주당귀·한라개송이·바위젓가락나물·한라꿩의다리·섬쥐송이·섬매자나무·좀갈매나무·병개암나무·시옥물참나무·가시복분자·제주조릿대 등 33종이 있다.
이 밖에도 우리나라의 중부·북부와 일본의 고산 지대에만 분포하는 들쭉나무, 일본의 서남단부에서만 자라는 참꽃나무, 북방분자로서 우리나라에서는 백두산에서만 자생하는 담매·시로미, 난대성식물로서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해녀콩·문주란·파초일엽·한란·목련·환근·비자나무·솔잎란·왕벚나무 등이 있다. 특히, 일본이 나라의 꽃으로 삼고 있는 왕벚나무의 자생지도 제주도이다.
1997년 식생의 구성은 20여 개의 군집으로 구분되는데 이 중 서어나무·개서어나무 군집이 전체 면적의 53.7%를 차지하고, 물참나무·졸참나무 군집이 25.7%, 소나무 군집이 8.3%, 구상나무 군집이 4.5% 로 되어 있다.
동물상은 분포 구계상 구북구(舊北區) 중 북부중국아계의 한국구(韓國區)에 속한다. 제주도는 대륙과 일본 사이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한대성과 열대성이 섞여 서식한다. 예를 들면, 평지에는 아열대성의 맹꽁이와 난대성의 청개구리가 서식하며, 중복 삼림지대에는 북방산개구리가 살고 있고 산정의 백록담 연안에는 무당개구리가 있다.
북방산개구리와 무당개구리는 모두 북방분자이며, 특히 무당개구리는 중국 윈난성(雲南省)의 고지와 한라산 지대가 분포상 남한계선을 형성한다.
곤충류에서도 한대성인 산굴뚝나비와 아열대성인 암붉은오색나비·남방공작나비 등이 함께 서식한다.
제주도의 동물상은 곤충류 1,602종(제주도 특산 12종 포함), 양서·파충류 17종, 조류 240종, 포유류 19종 등이다. 특산종으로는 모주둥이노린재·제주양코스커딱정벌레·제주풍뎅이·제주은주둥이벌참위영벌 등이 있다.
포유류로는 맹수는 없으나 노루가 많고 제주족제비가 서식한다. 조류로는 팔색조가 번식하고 제주딱다구리·꿩 등이 많다. 산지 동물들 가운데 멧돼지·대륙사슴은 전멸하였고 큰노루·살쾡이·원앙기러기·두루미·흑두루미·재두루미·무당개구리 등은 멸종 위기에 놓여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어음리의 빌레못동굴유적에서 긁개·첨기·홈날석기·돌날 등의 타제석기와 갈색곰·순록 등의 화석과 뼈가 발견되었고, 조천읍 북촌리유적에서 삼각형 점렬(點列)무늬토기와 원형 점렬무늬토기가 발견되어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는 전역에서 발견되며, 고인돌·옹관묘·석곽묘·공렬토기(孔列土器) 등도 발견된다.
제주도의 삼성신화(三姓神話)에 의하면 고(高)·양(良)·부(夫) 3신이 모흥혈(毛興穴, 삼성혈, 사적 제134호)에서 나와 자손을 번창하게 하였으며, 그 뒤 고을나(高乙那)의 15세 손이 신라에 내조(來朝)하였다고 한다.
고려 후기에는 삼별초(三別抄)가 여몽연합군에 밀려 들어와 분전하다가 항파두리(缸坡頭里)에서 패하였다.
그 뒤 원나라는 1276년(충렬왕 2)에 몽고말 160필을 들여와 성산읍 수산평(水山坪)에 방목하였고, 말 사육의 전문가인 목호(牧胡)를 파견하여 직접 관리하였다. 제주도의 목장은 조선 시대에까지 이어졌으며 성종 때에 100개로 정리되었다.
이 지역은 자연경관과 식물에 관련한 천연기념물과 기념물은 많으나 사적문화재는 빈약하다. 사찰로는 관음사(觀音寺)·천왕사(天王寺)·산방산사(山房山寺) 등이 있고, 성읍(城邑)에는 향교와 성지(城址)·현청사·돌하루방 등이 있다.
제주도민들은 11세기 초에 두 차례 있었던 한라산의 화산 폭발로 많은 희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그러한 한라산을 버리지는 못하였다. 화산 폭발이 있을 때마다 동굴에 숨거나 잠시 테우(배)를 타고 바다로 피신하였을지언정 그들 스스로 이곳에서의 삶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비록 바람 많고 재난 많은 땅을 유산으로 물려받기는 하였으나 한라산이 곧 삶의 터전으로 한라산없는 섬 생활이란 생각지도 못하였다. 더욱이 태풍과 가뭄과 풍랑은 제주도민들에게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것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고난의 역사는 재해뿐만 아니라 인위적인 여건에 의해서도 끊일 줄 몰랐다. 몽고의 야만적인 지배생활이 그랬으며, 근세에는 일부 파견 관리들의 수탈에 시달림을 받았다.
그러나 제주도민들이 처하였던 이러한 악조건은 오히려 이들에게 내핍과 인고의 정신을 심어주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타고난 강인함과 근면성 앞에는 어떤 도전도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다. 영산(靈山)인 한라산은 척박한 땅을 주었지만, 정직하고 순박하며 의롭게 살면 마음이 풍요롭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 삼무정신(三無精神)이다.
삼무란 도둑이 없고(盜無), 대문이 없으며(大門無), 거지가 없다(乞無)는 것을 의미한다. 도무는 정의의 정신을 일컫는 말이고, 대문무는 상호 신뢰의 정신을 의미하며, 걸무는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근면 정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렇게 제주도민의 정신적 지주로서 지켜져 온 미풍양속인 삼무정신, 즉 근면·자조·협동의 정신은 새마을정신의 모체가 되어 국민 모두의 정신으로 승화되는 전기를 맞기도 하였다. 한라산이 준 인고의 정신은 오늘의 풍요로운 제주를 일구는 원천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조국의 근대화를 촉진시키는 데에도 기여하였다.
우리나라 서남쪽의 태평양에 자리한 화산도인 제주도와 한라산은 빼어난 자연경관과 독특한 풍물을 빚어냄으로써 오늘날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관광지로 부상하였다. 한라산은 인류가 태어나기 이전에 솟아나 삼라만상이 명멸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므로 태풍과 전쟁 및 굶주림의 역사를 잘 알고 있다.
원나라가 고려에 침입하였을 때 삼별초를 이끌고 온 김통정(金通精)은 항파두리전투에서 패하고 붉은오름의 싸움에서 전우들을 모두 잃자 산 위로 올라가 비분을 참지 못하고 자결하였다. 그런가 하면 제주도에는 유난히도 민란이 많았다. 1168년(의종 22)의 양수(良守)의 난을 비롯하여 모두 20여 차례의 민란이 있었으며, 왜구의 침입도 빈번하였다.
이처럼 한라산은 영광보다는 분노를 더 많이 먹고 살았으면서도, 천지의 대주재로서의 의연함을 잃지 않고 민족의 산으로서 민족과 함께 숨결을 같이 해왔다.
남한의 최고봉인 한라산은 내륙 지방에 대한 바람막이 구실로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영남과 호남의 곡창지대는 한라산이 태풍의 방파제 구실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만약, 한라산이 없다면 이 지역의 벼농사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한라산은 이처럼 태풍의 길목에 우뚝 서서 내륙 지방을 지켜주는 수문장 구실까지 해오고 있다.
문학에 투영된 한라산의 모습은 다양하다. 흔히 신비로움과 인고(忍苦)의 상징으로 표현되기도 하나, 희망·평화·사랑의 상징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한라산은 이미 제주도 사람들만의 산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가슴 한가운데에 자리한 민족의 산으로 정착되었다. 한라산은 일찍이 금강산·지리산과 함께 삼신산의 하나로 꼽힐 만큼 명산이다.
예로부터 많은 선인(先人)들이 힘든 산행을 서슴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며, 산의 신비경을 기행문 등을 통하여 스스럼없이 찬미할 수 있었던 것도 우연만은 아닌 듯하다. 더욱이 백록과 선인(仙人) 한라산옹의 전설을 지닌 이 산의 신비경은 오늘날에도 시·소설 등을 통하여 많이 소개되고 있다.
한라산을 기술한 가장 오래된 문헌 가운데 하나로 김상헌(金尙憲)의 『남항일지(南航日誌)』를 꼽는다. 그는 1601년 (선조 34) 9월 한라산에 올라 산신에게 치제(致祭)를 올리면서 “병이 없고 곡식이 잘 자라며 축산이 번창하고 읍(邑)이 편안한 것은 곧 한라산신의 덕”이라고 말하였다.
특히, 그는 “금강산과 묘향산은 이름만 높을 뿐, 한라산의 기이하고 수려함에는 따라오지 못하리라.”고 하여 영산으로서뿐만 아니라 장엄함에서도 백두산 다음 가는 명산임을 확인시키고 있다.
한말의 최익현(崔益鉉)은 삶의 자세를 산행(山行)에 비유하였다. 1875년(고종 12) 3월 한라산을 등반한 그는 『한라산기(漢拏山記)』에서 “산은 도중에서 포기하면 그로 말미암아 뜻을 이룰 수 없게 되는 것이므로, 인간은 좀 더 태연하고 신중해야 한다.”고 인고의 정신을 한라산행에서 찾으려 하였다.
당시 그와 함께 산행에 오른 15여명 가운데 정상을 정복한 사람이 겨우 4명에 불과하였다는 기록에 비추어 한라산행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흰 사슴과 신선의 전설을 적극 뒷받침해 주는 기록도 있어 흥미롭다. 선조의 7남인 인성군(仁城君)의 셋째 아들인 이건(李健)은 『제주풍토기(濟州風土記)』에서 “한라산에는 곰·호랑이·이리 등과 같은 짐승은 없고, 소나 말이 잘 자라며, 사슴이 놀라울 정도로 번식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그는 또 “삼복더위에도 한라산 정상에는 얼음과 눈이 남아 있어 해마다 여름철이면 장정들을 모아 얼음을 날라다 관가에 공물로 바쳤다.”고 기록하고 있어 당시 한라산의 매혹적인 정경을 한눈에 읽을 수 있게 한다.
이건은 1628년(인조 6) 인성군이 광해군의 복위에 가담하였다 하여 전라도 진도(珍島)로 유배되면서 그 자신은 제주에 귀양 와 8년간 유배 생활을 하였는데, 한라산의 모습 등을 풍토기에 남겼다.
한라산을 소재로 한 고전문학이란 대부분이 기행문 형태이며, 그것도 유배인들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한라산의 오묘함과 지리·동물 분포·풍속 등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유배인이었던 임관주(任觀周)의 시에 나타난 한라산의 모습은 신비로움의 극치를 이룬다. 그는 1767년(영조 43) 귀양에서 풀려나 돌아가게 되자 한라산에 올라 산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푸른 바다는 넓고 넓어 아득한데/한라산은 그 위에 떠 있네/흰 사슴과 신선이 기다리는/이제야 그 상봉에 올랐네(茫茫滄海濶 上擧漢拏浮 白鹿仙人待 今登上之頭).”
현중식(玄重植)의 한시 「한라산」에 나타난 한라산의 모습 또한 매우 인상적이다. “서씨(徐氏)는 먼 옛날 이 산그늘을 일찍 지나갔고/오랜 세월이 되도록 흰 구름 높이 떠 홀로 한가로운데/오르고 또 올라 그 숭엄한 정상에 다다르면/지척 은하를 앉아서 어루만지겠구나(徐子當年曾過去 白雲千載獨浮閒 登登若得到危頂 咫尺銀河坐可攀).”
불로장생초를 캐기 위하여 한라산에 왔던 진시황의 신하 서불의 행적과 함께 산이 높고 숭고하다는 것을 실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한라산의 모습은 현대문학, 특히 시를 통하여 잘 표출되고 있다. 이은상(李殷相)은 일제의 압박이 심해지던 1937년에 「한라산기도」라는 시를 통하여 우리 민족의 염원인 광복과 평화를 기원하였다.
그가 한라산에 올라 기원한 기도문의 일부를 보면, “천지의 대주재(大主宰)시여/나는 지금 두 팔을 들고/당신이 내리시는 뜻을/받들려 하나이다/아끼지 마시옵소서/자비하신 말씀을……”
또한, 그는 기행문을 통하여 “아름답다. 신비하다. 저 한라산. 저 제주도. 뉘가 여기 이 같은 절해운도(絶海雲濤) 속에 한덩이의 땅을 던져 해중선부(海中仙府)를 만드셨나.” 하고 칭송하였다. 이렇듯 한라산은 성스럽고 자비로운 민족의 산으로 제주도민들의 애환을 함께 해왔다.
이 고장 출신의 시인 김광협(金光協)이 쓴 「한라산송」에서도 한라산은 제주민의 성스러운 부성(父性)이며 종교로서 가장 빼어난 명산으로 칭송되고 있다.
이효상(李孝祥)의 「한라산」에서는 한라산을 항상 백두산과 마주서서 묵묵히 이 나라를 지켜오는 자(者)로 표현하고, 언제나 구름 위에 서서 직접 하느님과 단둘이 속삭인다고 했다. 또한 한라산이 남한 제일의 명산일 뿐만 아니라 민족의 산으로서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줄 날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서정주(徐廷柱)는 「한라산 산신여인상(山神女印象)」에서 “그네 나이는 구백억세/그 자디잔 구백억개 산도화빛 이쁜 주름살속에/나는 흡수되어 딩굴어 내려가다. ”라는 말로 한라산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있다.
신석정(辛夕汀)도 「백록담」에서 “……나도 이대로/한라산 백록담 구름에 묻혀/마소랑 꽃이랑 오래도록 살고파……” 하고 목가적 풍경에 넋을 잃기도 하였다.
제주도민들에게 있어 한라산은 정신적 지주였으며, 저절로 시심(詩心)을 불러일으키는 구심체였다.
이 밖에도 한라산을 소재로 시를 쓴 시인들로는 고은(高銀)·정지용(鄭芝溶)·김대현(金大炫)·조병화(趙炳華)·이영걸(李永傑)·양중해(梁重海)·김시태(金時泰)·강통원(姜通源)·문충성(文忠誠)·한기팔(韓箕八) 등이 있다.
특히, 이영걸이 쓴 전 7부작(138행)의 장시(長詩)인 「한라산」은 제주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잘 드러나 있으며, 정지용의 「백록담」 이후 가장 긴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소설가로는 최현식(崔玄植)·오성찬(吳成贊)·현기영(玄基榮)·현길언(玄吉彦) 등이 있으나 순수하게 한라산을 소재로 한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문인들은 한라산을 통하여 애향심뿐만 아니라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데에 충실하였다. 그것은 잦았던 민란과 일제의 압정에 이어 4·3사건과 6·25로 이어지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유와 평화가 무엇이라는 것을 체험을 통하여 터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인들은 이 산을 ‘고향’·‘젊음’·‘순결’·‘침묵’의 산으로 칭송하였다. 이 섬의 선인들이 바람 많고 척박한 땅을 일구면서도 높은 긍지와 탐라인으로서의 숭고한 얼을 지닐 수 있었던 것도 한라산의 고고한 기상을 지녔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어느 작가는 한라산은 식물의 보고(寶庫)로서 신의 은총에 의하여 탄생된 것이 분명하다고 말하였다.
이 밖에도 한라산은 산이 높고 넓으며, 초지가 광활하고, 기상변화가 심한 산으로 기술되고 있다. 또한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면 한라산신의 노여움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시인 고은의 제주 체험기인 「제주도」는 한라산을 가장 깊이 있게 기술한 작품 중의 하나이다. 그는 “우미절대(優美絶對)한 산의 모습에 대해 어떤 감동도 그 아름다움에 버금하지 못한다.”고 찬탄하였다.
또, 소설가 박태순(朴泰洵)은 기행문 「국토와 민중」에서 “한라산은 신비하면서 자상하고 푸근하면서 자랑스럽다. 때문에 제주도를 밟는 것은 감미롭게 실종 당하고 있는 것과 흡사하다.”고 하였다. 그는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포근하여 마치 꿈속을 걷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또, 어떤 시인은 한라산을 ‘이 산하(山河)의 어버이’라고 찬양하기도 하였다. 제주도민의 삶의 터전이요 민족 의지의 상징인 한라산, 풍부한 식물과 4계가 뚜렷한 자연경관을 지닌 한라산의 참모습은 앞으로도 많은 문인들에 의하여 찬미되고 사랑받을 것이다.
한라산은 그 자체가 한 폭의 걸작이다. 특히, 녹담만설·영실기암(靈室奇巖)·탐라계곡(耽羅溪谷)·구구곡(九九谷)·어리목계곡 등은 경승이 빼어나 문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화가들의 작품 소재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대체로 현대 화가들에 의한 것으로서, 옛 사람들에 의하여 표출된 한라산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구태여 제주 미술의 근원을 찾는다면, 1702년(숙종 28) 제주목사 이형상(李衡祥)의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를 들 수 있다. 「탐라순력도」는 제주도의 역사적 사실과 한라산 등의 지리적 현상을 28폭에 수록한 원색도(原色圖)로서 가장 오래된 제주도 지도이다.
더욱이 그 중 호연금서(浩然琴書)는 바다 위에서 한라산을 바라보며 그린 그림으로 당시의 한라산 모습과 제주의 정취가 잘 묘사되어 있다. 한라장촉(漢拏壯囑) 또한 산악 지명 등을 소상하게 담고 있다.
한편 김정희(金正喜)의 「세한도(歲寒圖)」를 제주 미술의 근원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세한도」는 직접 한라산을 소재로 한 그림은 아니지만 당시 제주의 풍물을 담은 불후의 명작으로서, 후세에 많은 예술인을 배출하는 모체가 되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김정희는 1840년(헌종 6)에 제주에 유배되어 대정현(大靜縣)을 적거지(謫居地)로 삼고 9년여 동안 서화(書畵)뿐만 아니라 한시 등 문학에도 정진하여 독특한 서체의 경지를 개척하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라산의 풍물을 그린 정통 산수 화가는 없었고, 오직 이름 없는 화가들이 그린 민화만이 있었을 뿐이다. 따라서 현대 제주 미술의 발단은 6·25 이후로 보는 견해가 많다.
미술의 불모지였던 제주도에 국내 저명 화가들이 전란을 피하여 속속 들어오게 되었다. 홍종명(洪鍾鳴)·장이석(張利錫)·최영림(崔榮林)·이중섭(李仲燮) 등 중앙 화단의 화가들이 이곳을 피난지로 잡아, 불과 1, 2년에 지나지 않는 체재 기간 속에서도 많은 후진을 양성하였고, 그들 자신이 한라산의 수려한 경관을 화폭에 많이 담았다.
이에 앞서 일제 강점기에는 제주 출신의 김광추(金光秋)·변시지(邊時志)·양인옥(梁寅玉)·박태준(朴泰俊)·조영호(趙英豪)·장희옥(張喜玉) 등이 일본에 유학하여 미술을 수학하였다. 1950년대에 들어 조영호·장희옥·박태준·김일근(金一根)·고성진(高成珍) 등은 중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후진을 양성하였다.
이 밖에 1935년 선전(鮮展)에 입선한 김인지(金仁志)를 비롯한 현승배(玄承北)·김보윤(金寶潤)·김창해(金昌海) 등도 이 고장의 미술 발전에 기여한 바 크다.
이후 1960년대에 들어 도외(道外) 화단과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서울 등지에서 미술 교육을 받은 신진 화가들이 대거 귀향하게 되어 활기를 띠게 된다. 특히, 1970년대에 들어 제주도 미술계는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제주신문사가 1975년부터 해마다 미술전람회를 개최하여 작품 제작의 의욕을 고취하였으며, 이로써 지방 미술인을 대거 배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 많은 화가들은 한라산 곳곳의 4계를 화폭에 담았다.
제주도는 거친 바다와 박토를 유산으로 물려받아야 하였기 때문에 숙명적으로 힘든 노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따라서 노동요는 생활의 일부가 되어 풍성하게 전하여 내려온다.
“하루 종일 부르다봐도/부를 노래 수없이 있다/한라산이 내집이 되면/부를 노래 다 불러볼까.” 많은 제주민들은 한라산이 닳고닳아서 한 칸의 집이 될 때쯤에야 노래를 다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한라산이 담겨 있는 민요로는 「산천초목」·「오돌또기」·「이야홍타령」 등이 있다. 「오돌또기」는 제주도의 대표적인 창민요(唱民謠)로 경쾌하고 구성지다. “오돌또기·저기 춘향 논다/달도 밝고/내가 머리로 갈꺼나·……·한로산 허리엔/시러미 익은숭 만숭/서귀포 해녀는/바당에 든숭 만숭(후렴).”
오돌또기는 예쁜 여인이 노는 모습을, ‘저기 춘향 논다’는 저기 예쁜 여인이 나타났다라는 뜻으로, 이렇게 달도 밝은데 내가 앞장서서 놀러나 갈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야홍타령」도 「오돌또기」와 함께 제주민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이다. 이는 주로 여인들이 부르던 건전한 노동요이어서 리듬이 자유롭다. 「이야홍타령」은 한라산을 신선의 나라로, 또 말들이 살찌는 따뜻한 나라로 찬미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산천초목」은 경복궁 중수 때 부역으로 간 제주도민들이 불렀던 노래로, “흰 눈은 왜 내리나/한라산 선녀들이/춤을 추며 내려온다.”고 눈을 한라산 선녀로 미화하였다. 이렇듯 제주도 음악은 광복 전까지 민요 위주였으며 6·25까지도 현대 음악이 없었다.
6·25로 피난 온 바이올린의 계정식(桂貞植)과 성악의 김금환(金金煥) 등이 학교 교육을 통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으며, 미군소령 길버트(Gilbert,C.E.)가 여러 학교에 악기를 기증함으로써 비로소 현대 음악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라산을 소재로 한 노래는 없는 형편이고, 다만 각급 학교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그 정기와 기상을 우러르는 내용을 교가와 시가 등에 포함하여 부르는 정도이다.
(1) 수종
수종은 주목·서나무·졸참나무·벚나무류·구상나무 등이 대종을 이룬다. 1975년 이후의 식재 수종으로는 삼나무·편백나무·졸참나무 등이 많은데 표고 자목으로 활용되고 있다. 표고 재배의 자목으로는 졸참나무·개서나무·서나무·물가리나무·소리나무 등을 원목으로 사용하고 있다. 고도별로는 온대림 하부에 졸참나무·개서나무, 상부에 서나무·물가리나무·소리나무가 각각 분포한다.
자목 자원은 풍부하지만 천연보호구역에 묶여 자원량은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만 1982년 이후의 표고 자목 벌채 상황은 1982년 2,750㎥, 1983년 3,045㎥, 1984년 3,001㎥, 1985년 3, 121㎥, 1986년 2,829㎥ 등으로 연평균 3,069㎥에 달한다.
또한, 표고 생산 실적은 1982년 6만 8375㎏, 1983년 5만 1535㎏, 1984년 6만 1164㎏, 1985년 6만 3090㎏, 1990년 3만 9700㎏ 등으로 평균 5만㎏에 이른다.
(2) 관광자원
1970년에 한라산 일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약 151.35㎢이다. 1989년 이후부터 연간 250만 명 이상이 방문하고 있다.
계곡은 남측과 북측에 주로 분포하며 U자형으로 되어 있고 그 하부에는 상록수림이 발달하였다. 하천의 수원을 이루는 분수령은 한라산을 중심으로 서쪽에 한대악(漢大嶽)·볼레오름(1,392m)과 동쪽에 성판악(城板嶽)을 연결하는 산릉이다.
이곳에서 북류하는 한천으로는 별도천(別刀川)·산지천(山地川)·한천(漢川)·도근천(都近川)·외도천(外都川) 등이 있고 남류하는 것으로는 송천(松川)·효돈천(孝敦川)·연외천(淵外川)·정방천(正房川)·강정천·악근내·소가래천(小加來川) 등이 있다. 북측의 하천들은 비교적 직선적이며 폭포가 별로 없으나, 남측의 하천들은 유로가 곡류하고 하류에 폭포가 발달된 곳이 많다.
정방천 하류에는 정방폭포, 연외천 하류에는 천지연폭포(天池淵瀑布), 소가래천 하류에는 천제연폭포(天帝淵瀑布)가 발달되어 있다. 이들 대부분의 하천은 건천(乾川)이지만 호우시에는 순식간에 물이 넘쳐 교통을 차단하기도 한다.
유명한 계곡으로는 한천의 탐라계곡(耽羅溪谷), 외도천의 계곡, 도근천의 골머리계곡, 효돈천계곡, 수악계곡(水嶽溪谷), 도순천계곡(道順川溪谷) 등 6개가 있다.
성인과 내부 형태로 보아 한라산에 산재하는 용암굴은 구린굴·홍괘·상괘 등이 있을 뿐이다. 홍괘와 상괘는 그 길이가 30m 내외이며, 기타 동굴들은 길이가 5m 미만이지만 높은 지대에 분포하고 있어 방목이나 약초·종자를 채집하는 사람들 또는 사냥꾼들의 잠자리로 이용되고 있다.
구린굴은 관음사 등산로 입구에서 계곡을 따라 해발 720m 지점에 있다. 이것은 폭과 높이가 2∼5m이고 길이가 380m 정도인 용암굴로서 한라산 주봉(主峰)을 향하여 다소 위로 경사져 발달하였다.
한라산에는 주봉인 부악 주변에 300여 개의 측화산이 발달하였는데, 이들은 거의가 분화구를 가지며 화구의 형태는 도원추형(倒圓錐形)주 02)·구형(臼形)주 03)·마제형(馬蹄形)주 04) 등으로 각각 다르다. 그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것이 백록담인데 여기에는 화구호가 있다.
이 밖에도 화구에 연못이 있는 것으로는 사라악(沙羅嶽)·수장올(水長兀, 물장올)·논고악(論古嶽)·동수악(東水嶽)·어승생악(御乘生嶽)·토적악(土赤嶽) 등이 있다.
한라산의 해발 1,000m 이상 지역에는 속밭·상밭·장구목·큰수레밭 등이 발달하였다. 또한 윗세오름 일대 및 삼형제봉 일대에는 작은 고원들이 많이 발달하였다.
한라산 내의 폭포는 구구곡의 선녀폭포(仙女瀑布)가 장관을 이루며, 기타 기암(奇岩)과 주상절리·적설(積雪)·수빙(樹氷)주 05)·무빙(霧氷)주 06)·설니(雪泥)주 07)·일출·일몰·운해(雲海) 등도 유명하다.
한라산을 오르는 주요 등산로는 다섯 가지가 있다. 어리목 등산로는 어리목산장-사제비동산-만세동산-윗세오름대피소-정상이고, 성판악 등산로는 성판악휴게소-사라대피소-진달래밭대피소-정상이며, 관음사 등산로는 관음사-탐라계곡-개미목-용진각대피소-정상이고, 영실 등산로는 영실-오백나한-윗세오름대피소-정상이다.
이 밖에 돈네코 등산로는 다른 등산로에 비하여 가장 길고(12㎞) 상태가 좋지 못한 난코스로 지금은 자연 휴식년제로 통제되어 있다.
(3) 기타
한라산 천연보호구역은 동경 126°27′50″∼126。37′55″, 북위 33°19′10″∼33°25′35″에 위치하며 고도가 높아 여러 층의 기후대를 형성한다. 또한 다양한 동식물상을 포함하고 있어 분류학 및 생태학 연구의 보고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인위적·자연적 요인에 의한 훼손이 심화되고 있어 보존 대책이 시급하다.
인위적인 훼손은 증가 일로에 있는 등산객들이 버린 오물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다. 등산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등산로 주변은 토양이 다져지기 때문에 작은 산사태가 자주 발생하고 대피소 지역은 많은 등산객들이 야영을 하여 식생이 파괴되고 있다.
또한, 한라산에는 많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므로 단순한 등산 목적에서 교육적인 차원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개발하여 운영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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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다각형 기둥모양의 금
주02
거꾸로 된 원굴뿔모양
주03
절구모양
주04
말굽모양
주05
나뭇가지에 응결하여 된 얇은 얼음 층
주06
안개가 나뭇가지에 엉겨 이룬 얼음층
주07
눈으로 뒤범벅이 된 진 땅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김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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