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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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의정부에서 전라도의 각 진에서 편찬한 진지(鎭誌)와 사례를 합편한 지리지. 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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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895년 의정부에서 전라도의 각 진에서 편찬한 진지(鎭誌)와 사례를 합편한 지리지. 진지.
내용

3책. 필사본. 편자는 각 진의 진장(鎭將)인 첨사(僉使)·만호(萬戶) 등이다.

제1책에는 흑산진(黑山鎭)·거문진(巨文鎭)·청산진(靑山鎭)·삼도진(三島鎭)·지도진(智島鎭)·임자도진(荏子島鎭)·위도진(蝟島鎭)·녹도진(鹿島鎭)·고금도진(古今島鎭)·여도진(呂島鎭)이, 제2책에는 고군산진(古群山鎭)·회령포진(會寧浦鎭)·목포진(木浦鎭)·법성진(法聖鎭)·군산진(群山鎭)·가리포진(加里浦鎭)·다경포진(多慶浦鎭)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제3책에는 남고진(南固鎭)·위봉산성진(威鳳山城鎭)·고돌산진(古突山鎭)·방답진(防踏鎭)·남도진(南桃鎭)·입암진(笠巖鎭)·발포진(鉢浦鎭)·이진진(梨津鎭)·어란진(於蘭鎭)·임치진(臨淄鎭)·사도진(蛇島鎭)·금성진(金城鎭) 등이 수록되었다.

내용 구성은 각 진지마다 상이하지만, 대체로 각 진의 위치·설치 연혁·방리·인구·토지·각종 시설·군병과 군기·재정 구조 등을 밝혀 놓았다.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된 청산도진지를 예로 들면, 위치(位置)·설진연혁(設鎭沿革)·진관(鎭管)·면적(面積)·강계(疆界)·면질(面秩)·호구질(戶口秩)·소산(所産)·풍속(風俗)·토리(土理)·영애(嶺阨)·고적(古蹟)·성첩(城堞)·봉수(烽燧)·공해질(公廨秩)·사례(事例 : 戰船秩·鎭屬秩·軍摠秩·穀摠秩·松田秩·所屬結出稅秩·進上秩·上納秩·民庫應捧秩·上下秩·官廳所掌·工房庫所掌·吏房所掌) 등으로 되어 있다.

사례만을 기록한 진(흑산·삼도·고금도·목포·군산·위봉산성·고돌산)이나 진지만을 기록한 진(법성·남고)보다 진지와 사례를 함께 수록한 경우가 보다 상세하고 풍부한 내용을 보인다. 1871년에는 소속읍의 읍지에 진지를 첨부하였으나 1895년 읍지 편찬시에는 진지·영지·역지 등을 별도로 편찬하게 하여 읍지와 분리되었다.

이 책은 1895년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재래의 군영 체제가 해체되기 직전에 편찬된 진지이기 때문에, 조선 후기 해방편제(海防編制)와 각 진의 재정 구조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호남에서는 거문도사건 이후 이 지역의 수군배치체계에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종래 3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어 삼도진(三島鎭)이 설치되었던 섬을 영국 함대의 점령 이후 거문도로 명칭을 바꾸고 독진(獨鎭)을 설치하고 수군첨사를 배치하게 된 경위, 또한 거문도사건이 종료된 1887년부터는 바람이 강한 계절[風高]에는 청산도에 진을 두고, 바람이 약한 계절[風和]에는 거문도에 진을 두는 순회 제도를 운영하였음도 살필 수 있다.

연혁조의 내용을 통해서 주로 해안이나 도서 지방에 위치한 진들이 과거 궁방(宮房)에 절수되었던 곳이 많음도 알 수 있다. 회령포진과 같은 몇몇 소규모의 진에서는 백성들과 관리들의 극심한 유리 현상을 호소하고 있어서, 당시 무너져 가는 방위 체계의 단면도 엿볼 수 있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참고문헌

『호남영지(湖南營誌)』
『호좌수영지(湖左水營誌)』
『호우수영지(湖右水營誌)』
『호남읍지(湖南邑誌)』
『호남청사례(湖南廳事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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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양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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