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8년(선조 1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언적(李彦迪)과 송인수(宋麟壽)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58년(효종 9) ‘화산(華山)’이라 사액되어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왔다.
그 뒤 1869년(고종 6)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복원되지 못하였다. 유물로는 1984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현,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유허지의 원정비(院庭碑)가 남아 있다. 원정비는 송시열(宋時烈)이 글을 짓고 송준길(宋浚吉)이 글씨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