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7년(선조 40)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신말주(申末舟) · 김정(金淨) · 김인후(金麟厚) · 고경명(高敬命) · 김천일(金千鎰) 등의 덕행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뒤 박상(朴祥) · 유옥(柳沃) · 신공제(申公濟) · 양사형(楊士衡) · 김시서(金時瑞) 등을 추가배향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왔다.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며, 훼철되기 전의 경내 건물로는 현전(賢殿) · 신문(神門)과 동 · 서 협문(夾門), 강당 · 전사청(典祀廳) · 고사(雇舍) 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