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간부훈련대대부 ()

국방
단체
1946년 8월 15일 북한 군사력 건설과 전 부대들을 통합 지휘하기 위해 창설한 북한군 최고참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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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보안간부훈련대대부는 1946년 8월 15일 북한 군사력 건설과 전 부대들을 통합 지휘하기 위해 창설한 북한군 최고참모부이다. 1946년 소련군정과 북한 지도부는 군사 지휘체제를 일원화하고 정규군 창설을 목표로 보안 간부 훈련 대대부를 설립했다. 이 조직은 북한 정규군의 모체로 청년들을 강제 징집해 소련제 무기로 무장해 군사 훈련을 실시하였다. 여러 보안 훈련소와 철도 경비대를 통합·개편해 정규 사단의 모체로 변모해갔고, 소련 군사고문단의 군사교육 지원을 받았다. 북한 정규군의 초석이 되었으며, 김일성 직계가 군사력을 장악해 단일 지휘체제를 형성할 수 있었다.

정의
1946년 8월 15일 북한 군사력 건설과 전 부대들을 통합 지휘하기 위해 창설한 북한군 최고참모부.
개설

소련군정 당국과 북한지도부는 1946년 8월 15일 보안대와 철도경비대가 증편되고 평양학원, 중앙보안간부학교, 보안훈련소, 철도경비훈련소 등에서 군 인력이 양성되자 지휘체제를 일원화하기 위해 북한군 최고참모부인 보안간부훈련대대부를 설치하였다. 예하부대는 몇 차례 개편과 통합을 거치며 정규군의 모체로 변모해 갔다.

설립목적

북한지도부는 북한 정규군을 창설하기 위해 군사 지휘체제를 단일화하고 군사시설을 점차 확충하면서 병력증강과 군사훈련을 병행하고 각 훈련소들을 사단편성의 모체로 삼았다. 대대부의 병력은 18세 이상 25세까지의 청년으로 모병하였으나 점차 강제로 징집하여 민청원과 당원을 집단적으로 입소시켰다. 장비는 초기에는 일제 38식 소총으로 무장하였으나 점차 소련제 소총과 탄약을 확보하고 소련군 장교를 고문관으로 두어 훈련을 실시하였다.

연원 및 변천

1946년 7월과 8월, 2차에 걸쳐 김일성을 비롯한 최용건 · 김책 · 강건 · 안길 · 오백용 · 박영순 소련파와 무정 · 박일 우주 연연안파들이 한 곳에 모여 군사력 건설에 관하여 토의한 결과 1946년 8월 15일 평양 서기산 무덕전 자리에 보안간부훈련대대부를 창설하였다. 이는 실제 정규군대의 위장명칭이자 북한군의 최고참모부였다. 주요 간부진으로는 훈련대대부 사령관 최용건, 부사령관겸 문화 부사령관 김일, 포병 부사령관 무정무정, 총참모장 안철, 후방부사령관 최홍극, 작전부장 유신, 간부부장 이림, 통신부장 박영순, 공병부장 황호림, 정찰부장 최원, 사령관 총고문 스미르노프 소장 등이었다.

김일성은 보안간부훈련소 제1소 문화부소장에 서철(徐哲)을 임명하였으며, 1946년 최광을 참모장에 보안간부훈련소 제2소 소장은 강건(姜健)이 맡았다. 1946년 9월에는 소련 군사고문단 소장이 북한에 도착하여 각 훈련소와 군사학교에 배치되었다.

훈련대대부는 사령부 예하에 교도중대, 위생소대와 3개 대대를 두었는데 1개 대대는 다시 4개 중대로 구분되어 각각 배치하였다. 예하부대 중 철도경비대와 보안훈련소는 몇 차례의 통합, 증 · 개편을 통해 정규사단의 모체로 변모해 갔다.

기능과 역할

보안간부훈련대대부는 사실상 북한군의 창군이었으며 군단일 체제를 형성하게 되었다. 훈련대대부는 군사시설을 점차 확충하면서 병력증강과 군사훈련을 병행하였으며 개편과 통합을 몇 차례 거치며 정규군의 모체로 변모해 갔다. 보안간부훈련소가 신병을 모집하여 각 지역별로 사단 및 여단으로 확장되면서 북한 정규군의 원형이 완성되었다.

현황

1946년 11월 10일에 철도경비대와 보안훈련소를 통합 개편하였는데, 개천에 있는 보안훈련소와 개천과 나남에 있는 철도경비훈련소를 통합하여 개천에 보안간부 훈련 제2소를 그리고 철도경비대를 해체 흡수하여 평양에 보안간부 훈련 제3소를 설치하여 철도경비 13개 중대는 3개 대대로 개편하여 훈련 제3소의 예하 부대로 되었다. 당시 개천의 훈련 제1소를 개천사단 또는 제1사단, 나남의 훈련 제2소를 나남사단 또는 제2사단, 평양의 훈련 제3소는 철도경비사령부라고 호칭하였다. 이와 같이 신병훈련 기관인 3개의 훈련소가 모두 철도경비대를 주축으로 증 · 개편되었는데, 3개 훈련소는 북한 정규군 건설의 모체가 되었다.

의의와 평가

훈련대대부의 창설 이후 증 · 개편 과정에서 나타난 특징들은 다음과 같이 평가된다. 첫째, 당시 북한에 산재된 무장부대들을 통합하여 훈련대대부라는 군사적 단일 지휘체제로 형성되었다는 사실이며, 특히 김일성 직계인 최용건, 안길, 김일 등으로 하여금 이 무장부대들을 장악하게 한 점이다. 둘째, 보안간부훈련대대부라는 위장 간판을 사용한 것이다. 셋째, 이 훈련대대부는 장차 북한군의 모체로 발전시킬 계획에 따라 정규군 편성으로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넷째, 소련군이 많은 무기와 군복을 때맞추어 보급하고, 소련 고문관을 각 군사학교와 훈련소에 배치하였다는 사실 등이다.

참고문헌

『북한인민군대사』(장준익, 한국발전연구원, 1991)
『세기와 더불어 제8권』(김일성, 조선노동당출판사, 1998)
『6.25전쟁사 제1권』(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4)
『남북한의 창군』(한용원, 오름, 2008)
집필자
양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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