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 마공리·청하리·하초리 일대의 청리지방공단지 조성부지내에 위치한다. 이 지역은 상주시 중심부에서 남서쪽이며, 발굴조사 구역은 전체적으로 해발 80∼150m 내외의 얕은 구릉지 중에서 기양산에서 북서쪽으로 길게 뻗어 내리는 2개의 능선 말단부와 능선 사이에 위치하는 속칭 밀매동산으로 불리는 해발 97m의 낮은 구릉성 산지에 입지한다. 조사 결과 확인된 유구는 청동기시대 수혈유구 1기, 삼국시대에서 근대까지의 고분 706기, 기와가마터 5기, 건물지 1동, 기타유구 4기 등 모두 718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도질토기류 954점, 철기류 1,111점 등 총 2,928점이 출토되었다.
토광묘는 묘광의 길이와 면적으로 볼 때, Ⅰ형식은 소형의 토광묘, Ⅱ형식은 중형의 토광묘로 부장량이 Ⅰ형식보다 증가한 것, Ⅲ형식은 대형의 토광묘로 능선을 따라 배치되었고 입지도 우월한 것으로 구분된다. 철기가 부장되지 않은 Ⅱ형식은 여성의 무덤으로 판단된다. 대체로 피장자의 두향은 남쪽과 동쪽이 다수이다.
유구와 유물로 상대연대를 검토한 결과, 1단계는 토광묘가 수용되는 시기로 4세기 후반, 2·3단계는 석곽묘의 초기에 해당되는 5세기 초중반, 4단계는 토광묘가 소멸하는 5세기 후반으로 볼 수 있다. 이 지역은 1단계 토광묘에서 신라양식 토기가 출현하는 점으로 보아 일찍부터 신라의 영향권에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석곽묘는 5세기 전반에 도입되어 중반에 대형의 수혈식석곽묘가 축조되고 횡구식석실묘가 도입되는 5세기 후반에는 더 이상 조영되지 않는다. 석실분은 기양산에서 마공리쪽으로 뻗은 능선에 주로 형성되어 있고, 전기는 장방형의 중형의 석실로 모두 우편연도이며, 평천정이며, 후기는 대형의 석실분이 등장하며 중형 석실과 공존한다. 결론적으로 이 지역 고분은 토광묘가 먼저 축조되기 시작하였고 이후 석곽묘, 석실묘 등이 차례로 채용된 것으로 판단된다.
유물은 토광묘와 석곽묘에서 고배·장경호·단경호·대부완 등 신라양식의 토기이나 재지에서 제작된 것과 일부는 금성산고분군을 중심으로 하는 의성양식토기가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의성 지역의 집단과 긴밀한 관계가 있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석실묘에서는 단각고배·부가구연장경호·대부장경호·병 등 토기류와 동지금장이식·청동제 교구와 과판 등의 장신구류, 철부·철도자 등의 철기류가 출토되었다. 이 처럼 위계가 낮은 유물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상주지역의 중심고분군인 병성동과 헌신동 고분군의 하위집단 무덤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