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순(全月順)은 일제강점기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와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에서 활약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정선(旌善)이며, 전월선(全月善)이란 이름도 사용하였다.
1923년 2월 6일 경상북도 상주군 공성면 금계리 694번지에서 아버지 전석출(全石出)의 2녀 중 둘째딸로 태어났다. 1939년 9월 중국 귀주성(貴州省)으로 이주하였고, 1942년 19세 되던 해에 백범 김구(金九)의 중매로 김근수(金根洙)와 결혼하였다. 김근수는 광복군 제1지대에서 낙양지구 선전공작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슬하에 3남 4녀의 7남매를 두었다.
전월순은 조선의용대와 광복군 활동을 펼치다가 1945년 귀국하여 서울 마포와 경기도 용인 등지에서 살았다. 1991년 남편 김근수와 사별하였으며, 2009년 5월 25일 노환으로 향년 87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유해는 대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제4묘역에 안장되었다.
1938년 10월에 우한〔武漢〕에서 조선의용대가 창설되었다. 우한이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함락되자 조선의용대는 광시성〔廣西省〕 구이린〔桂林〕으로 본부를 이동하였다. 구이린에서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이 결성되었다. 1939년 9월 중국 귀주성으로 이주한 전월순은 16세의 나이로 구이린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에 입대하였다. 부녀복무단원들은 일본군에 대한 정보 수집과 대원 초모 활동을 펼치었다.
중국 국민당 지구에서 활동했던 조선의용대와 부녀복무단 일부는 중국 국민당 포로수용소로 찾아가 일본군으로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힌 한적(韓籍) 병사 30여명을 석방시키고 소정의 훈련을 받게 한 뒤 조선의용대에 입대시켰다. 한편 1941년 6월 팔로군 태항산 근거지로 들어간 조선의용대원과 부녀복무단 대원들은 조선의용대 화북지대(華北支隊)에서 조선의용군 화북지대로 개편되었다.
한편 충칭〔重慶〕에서는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이 창군되었으며, 전월순 부부는 10월 충칭으로 이동하였다. 1942년 4월 20일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8차 국무회의에서 조선의용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 산하로 편입하였다. 전월순 부부는 1942년 7월에 한국광복군 제1지대 대원으로 편제되어 광복군으로 활동하였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