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명은 대량(大良). 경상남도 함안(咸安) 출신. 내수(乃秀)의 아들이다.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41년게이오의숙대학(慶應義塾大學) 문학부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대학졸업 뒤 잠시 회사원으로 근무하다가 1946년부터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강사 겸 사학과 교수조무원(敎授助務員)으로 일하였다. 1948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조교수로 승진했으나, 6·25 발발과 일신상의 이유로 교수직을 사임하였다.
1954년 다시 동아대학교 부교수로 취임한 이후 숙명여자대학교·고려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 때 동아대학교에서는 문리과대학장(1959∼1961), 숙명여자대학교에서는 도서관장(1966∼1967), 고려대학교에서는 박물관장(1970∼1976)을 역임하였다.
또한 1962년부터 1969년까지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다. 1978년 고려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의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한 뒤 전주대학교와 아주대학교의 대우교수로서 교편생활을 계속하였다.
한편 연구에도 남다른 정열을 기울여 많은 업적을 남겼다. 초기의 학문적 관심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에 관한 것으로, 1948년『사해(史海)』 제1집에 발표한 「고려 초기의 대 거란관계(對契丹關係)」가 그것이다.
그러나 한국사의 이해를 위한 보다 중요한 과제는 그와 같은 외세와의 관계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발전을 추진시킨 내재적 요인을 구명하는 것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토지문제 특히 고려시대의 토지지배관계 및 이에 관련된 문제들을 해명하는 작업을 주제로 선정하였다. 이후 연구생활도 거의 이 문제로 일관하였다.
1963년 「고려 초기의 군인전」과 1965년「고려 전기의 공전·사전과 그 차율수조(差率收租)에 대하여」를 발표하였다. 같은 해 『한국문화사대계 II』에 발표된 「한국토지제도사」의 신라와 고려시대 부분은 이를 바탕으로 하여 당시까지의 연구를 집성한 최초의 연구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1980년 『고려 토지제도사연구』라는 저서를 내놓았다. 이는 전시과제도(田柴科制度)와 공전·사전의 제유형 및 조세·공부(貢賦)·역역(力役) 등을 다룬, 이 방면에 관한 이후 1991년 개정판이 발간되었다.
한편, 죽은 다음해인 1992년 생전에 기획했던 시대구분과 정체성의 문제 등 몇몇 과제에 대한 연구물이 『한국사회(韓國社會)의 역사상(歷史像)』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다. 이후 2017년 선생 탄신 100주년을 맞이하여, 강진철의 역사학을 재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대회의 성과는 『강진철 역사학의 이해』로 발간되었다.
『고려토지제도사연구』저술에 대한 공로로 월봉저작상(月峰著作賞)·아카데미상을 수상하였다. 1989년 신라의 녹읍(祿邑), 고려 후기의 농장과 지대(地代), 그리고 진전(陳田)과 사전개혁(私田改革) 등을 연구한 『한국중세토지소유연구』를 출간, 이듬해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