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문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 판전교시사를 역임한 문신.
이칭
자야(子野)
매계(梅溪)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주요 작품
대소원기(大召院記)|영주남원루기(寧州南院樓記)|차김사승부금주운(次金寺丞赴錦州韻)|제웅천강(題熊川江)|우제(偶題)
주요 관직
천안부사|성균사예|판전교시사
내용 요약

강호문은 고려 후기 판전교시사를 역임한 문신이다. 1362년(공민왕 11)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판전교시사에 이르렀다. 시문에 뛰어났으며, 유교 지식인들과의 교유도 활발하여 같은 시기에 급제한 이숭인, 정도전과 돈독하게 지냈고, 이색, 정몽주와도 친교를 맺었다.

정의
고려 후기 판전교시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및 인적 사항

자는 자야(子野), 호는 매계(梅溪)이며, 선대 가계는 확인되지 않는다. 부인 문씨(文氏)는 광주(光州) 갑향(甲鄕) 사람인데, 1388년(우왕 14) 7월 왜구 침입 때 순결을 지킨 행적이 높이 평가되어 열녀로 칭송을 받았으며, 『고려사(高麗史)』 「열녀전」에 실려 있다. 자녀 둘이 있었는데, 왜구 침입 때 희생된 것으로 전한다.

주요 활동

강호문은 1362년(공민왕 11) 10월 우시중(右侍中) 홍언박(洪彦博)과 지도첨의(直都僉議) 유숙(柳淑)이 좌주(座主)가 되어 주관한 과거에 합격하였다. 이때 강호문과 함께 과거에 합격한 인물들은 박의중(朴宜中), 이숭인(李崇仁), 허시(許時), 정도전(鄭道傳), 설장수(偰長壽), 한리(韓理) 등 33명이었다.

과거 합격 후 강호문이 어떤 벼슬을 지냈는지 당시 인사 발령 기록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고려사』 「열녀전」에서 그의 부인 문씨를 소개하면서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강호문에게 시집갔다”는 기록이 있어서, 강호문의 최종 벼슬이 판전교시사였음을 알 수 있다. 강호문은 성균사예(成均司藝)도 역임하였는데, 이는 이색(李穡)이 쓴 ‘사암(思菴) 유숙(柳淑)의 주1에 보낸 서문(序文)’에서 확인된다.

강호문은 수령인 천안부사(天安府使)로도 활동했는데, 그가 재임 중 직접 쓴 「영주남원루기(寧州南院樓記)」에서 “지난 계축년(1373년, 공민왕 22) 봄에 내가 조정의 명령으로 이 고을에 부임하게 되었다”고 한 데서 드러나고 있다.

강호문은 말년에 전라도 담양에 주2한 것으로 전한다. 유교 지식인들과의 교유도 활발하여 같은 시기에 급제한 이숭인, 정도전과 돈독하게 지냈고, 이색, 정몽주(鄭夢周)와도 친교를 맺었다. 특히 권근(權近)은 그의 시 「남행록(南行錄)」에서 “자야(子埜) 강 선생이 역마를 달려 찾아보고 작별한 뒤에 시 두 수를 부쳐 왔다〔子埜康先生馳馹見訪, 別後寄詩二首〕”라고 하여, 둘 사이 친분이 남달랐음을 보여주고 있다.

학문과 저술

강호문은 시문(詩文)에 능하여, 천안부사로 재직할 때 그곳의 누정 기문(記文)인 「대소원기(大召院記)」와 「영주남원루기(寧州南院樓記)」를 지었다. 『동문선』에는 그의 시로 「금주(錦州)로 부임하는 김시승(金寺丞)을 보내며〔次金寺丞赴錦州韻〕」’, 「제웅천강(題熊川江)」, 「우제(偶題)」 등 3수가 수록되어 있다. 정몽주의 『포은집(圃隱集)』에도 강호문의 「포은 상국의 복직을 축하하다〔賀圃隱相國復職〕」라는 시가 소개되어 있다. 권근의 『양촌집(陽村集)』 「남행록(南行錄)」에서도 “강(康) 선생이 또 장구(長句) 4운(韻)을 부쳐 왔는데 그 운을 차한다〔康先生又寄長句四韵, 次其韵〕”라고 하여 강호문이 여러 편의 시를 지었음을 전하고 있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도은집(陶隱集)』
『동문선(東文選)』
『목은집(牧隱集)』
『삼봉집(三峯集)』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양촌집(陽村集)』
『포은집(圃隱集)』

논문

하정승, 「고려시대 유학 교육과 여말선초 학맥의 형성」(『동방한문학』 82, 동방한문학회, 2020)
김난옥, 「고려말 시문 교류와 인적관계」(『한국사학보』 61, 고려사학회, 2015)
강혜선, 「고려 말 사대부의 교유시 연구」(『한국한시연구』 22, 한국한시학회, 2014)
주석
주1

여러 편의 시를 모아서 엮은 책.    우리말샘

주2

남의 집이나 타향에서 임시로 몸을 부쳐 삶. 또는 그런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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