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만주(南滿洲)에 있는 독립운동단체인 대한의용군사의회(大韓義勇軍事議會)·한족회(韓族會)·대한독립단·청년단연합회 등의 지도자들이 각 단체를 통합하여 상해(上海)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에 두기로 합의하고 조직한 통합군사기관이다.
이 때, 재만교민(在滿僑民)의 통치기관으로서 광복군참리부(光復軍參理部)를 동시에 결성하였다. 광복군사령부는 임시정부 군무부의 직할기관이 되었으며, 각 지방에는 군영(軍營)을 설치하여 독립전쟁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조직은, 사령장 조맹선(趙孟善), 부관 겸 훈련국장 여순근(呂淳根), 참모장 이탁(李鐸), 군정 겸 군기국장 김승학(金承學), 군법국장 변창근(邊昌根), 군수국장 유응하(劉應夏), 군령국장 박이열(朴利烈), 소모국장(召募局長) 홍식(洪植), 정보국장 양기하(梁基瑕), 훈련국장 여순근이었다. 제1영·제2영 산하 대대를 영(營)으로 승격시켰고 천마산대를 이끌던 최시흥이 제4영장이 되면서 조직을 6개 영으로 확장하였다. 제1영장 변창근(邊昌根), 제2영장 오동진(吳東振), 제3영장 홍식, 제4영장 최시흥, 제5영장 최찬(崔燦), 제6영장 김창곤(金昌坤)이었다.
광복군이 편성된 이래 끊임없이 국내에 진입하여 일본군경과 활발한 전투를 벌였는데, 1920년에만 일본군경과의 교전 78차, 주재소습격 56처, 면사무소 등 일제행정기관 파괴 20개소, 일본경찰 사살 96명이라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1922년 재만독립군 각 부대가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로 통합될 때 흡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