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필 금강전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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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전도 / 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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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화가 정선(鄭敾)이 그린 금강산도(金剛山圖).
정의
조선 후기의 화가 정선(鄭敾)이 그린 금강산도(金剛山圖).
개설

1984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종이 바탕에 수묵담채로 그렸고, 화폭의 크기는 세로 130.7㎝, 가로 59㎝이다.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되어 있다. 「금강전도(金剛全圖)」는 정선이 만 58세 때인 1734년(영조 10) 겨울 만폭동(萬瀑洞)을 중심으로 금강내산(金剛內山)의 전체 경관을 그린 것이다. 화면의 왼쪽 윗부분에 ‘금강전도(金剛全圖)’라는 제목과 ‘겸재(謙齋)’라는 그의 호가 적혀 있고 그 아래에 ‘겸재’라고 새긴 백문방인이 찍혀 있다. 정선은 산수화가 중국화의 모작에 그쳤던 시기에 스스로 국내 명승지를 찾아다니며 일일이 사생하여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많이 그림으로써 한국 산수화의 기원을 세운 선구자이다.

내용

「금강전도」는 원형(圓形) 구도로 윗부분에 비로봉(毗盧峰)이 우뚝 솟아 있다. 거기서 화면의 중심인 만폭동을 지나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끝 부분에 장안사(長安寺)의 비홍교(飛虹橋)가 배치되어 있다. 표훈사(表訓寺)와 정양사(正陽寺) 등이 그려진 그림의 왼쪽 부분은 무성한 숲이 어우러진 부드러운 토산(土山)으로 묘사되어 맞은편의 예리한 암산들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화면의 오른쪽에는 금강산의 여러 바위봉우리들이 바위 꼭대기에서 ‘ㅅ’자로 붓 자국을 내면서 수직으로 다시 꺾이는, 이른바 수직 준법(垂直皴法)으로 표현되어 있다. 산의 둘레에는 엷은 청색을 문질러 발라 원형 구도의 둥근 형태를 강조하면서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듯한 공간감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구도는 중국을 중앙으로 하여 세계를 둥글게 표현한 「천하도(天下圖)」같은 옛 지도에서 영향을 받은 듯하다.

그림의 전체적인 구상은 정철(鄭澈)의 「관동별곡(關東別曲)」에 나타나는 금강산 묘사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정철은 그의 「관동별곡」에서 진헐대(眞歇臺)에 올라 내금강 여러 봉우리를 바라보며 “…부용(芙蓉)을 꽂았는 듯, 백옥(白玉)을 묶었는 듯…”이라고 읊었으니 내금강(內金剛)을 한 송이 연꽃이나 옥을 묶어 놓은 것 같다고 표현하였다. 금강산에 대한 이러한 형태 감각이 노래로 읊어져 널리 퍼지면서 정선과 같은 산수화가도 그러한 가사 내용을 조형화하는 데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은 듯하다.

화면의 오른쪽 윗부분에는 제화시(題畵詩)와 함께 “甲寅冬題(갑인동제)”라는 관기(款記)가 적혀 있다. 제화시를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만이천봉 개골산, 누가 참 모습 그릴런가. 뭇 향기 동해 밖에 떠오르고, 쌓인 기운 세계에 서려 있네. 몇 송이 연꽃 해맑은 자태 드러내고, 솔과 잣나무 숲에 절간일랑 가려 있네. 비록 걸어서 이제 꼭 찾아간다 해도, 그려서 벽에 걸어 놓고 실컷 보느니만 못하겠네.”

이 「금강전도」는 내금강산의 특징을 잘 묘사한 것은 물론 당시 사람들의 우주관과 불교의 정토사상(淨土思想)이 반영되어 있다. 즉, 옛날 중국의 회화이론가인 종병(宗炳)에서 비롯된, “젊어서 산천을 돌아보고, 늙어서 이들을 그려 벽에 걸어 놓고 그 속에 노닌다.”는 와유(臥游: 臥以游之의 준말로서 산수화를 보며 즐기는 일)라는 동양 산수화의 전통사상이 담겨 있는 듯하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 금강산 그림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그림은 내금강의 전경을 반조감도적(半鳥瞰圖的)인 시점과 원형 구도로써 압축하여 나타낸 것이라든지, 미점(米點)의 토산과 정선 특유의 수직준법으로 처리한 암산의 대조적인 표현과 포치는 그의 금강산 화풍의 전형과 완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같은 정선의 화풍은 후대의 금강산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참고문헌

『금강산도 연구』(박은순, 일지사, 1997)
『한국의 미』 1-겸재 정선-(정양모 감수, 중앙일보사, 1983)
「금강전도의 도상과 상징」(유준영, 『미술사학』Ⅴ, 1993)
「금강전도고찰」(유준영, 『고문화』 18, 한국대학박물관협회,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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