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주군 ()

관북지도 / 길주목지도
관북지도 / 길주목지도
인문지리
지명
함경북도 남서부에 위치한 군.
정의
함경북도 남서부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명천군과 동해, 서쪽은 함경남도 단천군·혜산군,남쪽은 학성군, 북쪽은 무산군·경성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8°56′∼129°28′, 북위 40°45′∼41°17′에 위치하며, 면적 1,376㎢, 인구 10만 8317명(1945년 현재)이다. 1개 읍 5개 면 54개 동으로 되어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길주읍 길북동이다.

한동안 '함길도(咸吉道)'라 한 것과 같이 길주는 함경북도의 중심지였으므로 개발 역사가 길어 벼·보리·감자 등의 농산물도 많다. 해방 전에는 제재·펄프·제지공장이 있었다. 그 외에 운모 가공업, 전기 절연체, 통신 설비물, 규조토 생산을 하고 있다. 길주(吉州)를 지나 남북으로 평라선(平羅線, 평양∼나진)이 간선 역할을 하고 있고, 길주에서 북서 방향으로 백두산 청년선이 분기하고 있다. 따라서 이곳은 철도 교통의 중심을 이룬다고 하겠다.

한편 원산에서 청진을 거쳐 두만강 연안 국경 지역에 이르는 도로가 청라선 철도와 거의 평행하여 통해 있다. 또한, 길주에서 화대(花臺)에 이르는 도로도 있다. 길주 가까이에는 길주 온천, 온수평 온천(溫水坪溫泉) 등이 있다. 이곳은 경승지인 칠보산(七寶山)에 이르는 기점이 되기도 한다.

자연환경

지세는 함경산맥(咸鏡山脈)과 마천령산맥(摩天嶺山脈)의 교차점에 있어 서북부의 반은 산지로 되어 있다. 동쪽은 대소 구릉의 기복은 있으나 비교적 넓은 평원을 이루고 있고, 서북 방향에서 동남 방향으로 점차 낮아진다. 서북쪽 일부 지역은 편마암과 화강암 지질로 되어 있으나, 그 밖의 지역은 퇴적암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대표적인 산은 설령봉(雪嶺峰, 1,836m)·고두산(高頭山, 1,988m)·두류산(頭流山, 2,309m)·만탑산(萬塔山, 2,205m) 등이다. 토양은 도내에서 비옥한 편에 속한다. 특히, 남대천 하류 이북은 길주·명천지구대를 형성하고, 남대천 유역에는 비교적 넓고 비옥한 평야가 전개되어 있다.

서북 산악 지역과 동남 평야 지역의 기온차가 심하며, 연평균 기온 8℃, 1월 평균 기온 -9℃, 8월 평균 기온 21.8℃이다. 연 강수량은 670㎜ 내외이고,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린다.

역사

[고 대]

도내 두만강 연변과 근접지 해안에서 구석기 시대로부터 신석기 시대 말기에 이르는 유물·유적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이곳에도 선사 시대에 이미 시람이 살았으리라 짐작된다.

《사기》에 따르면, 이곳은 숙신(肅愼)·읍루(挹婁)·예맥(濊貊)·옥저(沃沮)·부여(夫餘) 등 여러 부족 국가가 있었다고 전하며, 삼국 시대에는 고구려의 영토였다. 699년 고구려 유민들이 발해를 세웠을 때에는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 소속이었다.

[고 려]

고려 초기의 영역은 신라 시대의 영토를 계승하여 발해와 북계를 이루었다. 926년(태조 9) 발해가 거란(契丹)에 의하여 멸망된 후 수세기 동안 이 지역은 거란·금(金)·원(元)·명(明) 등 여러 이민족의 지배하에 있었다.

고려 말에 이 지역에 토착해 있던 여진(女眞)을 몰아내고 그 세력 범위를 두만강 하구에까지 확장하였다. 그리고 1390년(공양왕 2)에 지난날 해양(海洋, 三海洋·弓漢村)이라 불리던 이곳을 길주라 개칭하고, 영주(英州)·선화(宣化) 등의 진과 합쳐 만호부(萬戶府)를 두었다.

[조 선]

1398년(태조 7) 동북면의 주·군·현을 분정할 때 길주목(吉州牧)으로 승격되었다. 1467년(세조 13) 이 고을 출신 이시애(李施愛)가 반란을 일으킴으로 인하여 1469년(예종 1)에 길주를 길성(吉城)으로 개명하고 목을 현으로 강등시켰으며, 영평령 이북을 경계로 양분하여 명천현(明川縣)을 신설하였다.

그 뒤 1512년(중종 7) 명천을 다시 길주와 합하고 목사와 판관을 두었으나, 이듬해에 다시 명천현을 복귀시켰다. 1605년(선조 38)에 방어사를 두었으며, 1614년(광해군 6)에 목사를 겸직하도록 하였고, 1701년(숙종 27)에는 방어영을 성진으로 옮겼다.

임진왜란 때에는 길주성에 왜군 본진이 주둔하였다. 관내 백탑·석성·모회·임명 등지는 관북 의병이 적을 요격하여 대첩을 거둔 격전지이며, 이 고을 출신 의병장으로는 허진(許珍)·김정국(金定國)·허대성(許大成) 등이 있다.

[근 대]

갑오개혁으로 지방관제가 바뀜에 따라 1895년 부가 군이 되었다. 1898년에 군의 서남쪽 설봉산 이남의 땅이 분리되어 성진군이 신설되었으나, 분군을 둘러싼 찬반 양파의 대립이 심하여 1904년 정부 조정으로 완전 분군이 되기까지 6년 동안 두 번의 합군이 있었다. 본래 7개 면이었으나 행정구역 개편으로 길성면과 영북면이 통합되어 길주면이 되었다.

혜산선(惠山線)과 백무선(白茂線) 철도가 개통된 이후에 산업·교통이 발달함에 따라 1938년 길주면은 읍으로 승격하여 1개 읍 5개 면이 되었다. 1945년 당시 호수 2만 109호, 인구 10만 8317명에 이른다.

근대 인물로는 일찍이 북간도에 이주하여 간민회 분회장, 한족생계회 부회장, 광동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였고, 대한정의군정사(大韓正義軍政司)의 외교단장으로 활약하면서 소련으로부터 무기를 구입하여 독립군에게 공급하는 등 항일 투쟁에 일생을 바친 서상용(徐相庸),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독립 운동을 하면서 항일 투쟁 전단을 국내에 반입하다가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청진형무소에 수감 중 장기 정치범들과 모의하여 탈옥을 기도하였다가 다시 체포되어 중형에 처해진 전일(全一) 등 많은 독립 운동가가 있었다.

유물·유적

이 군에는 성터와 보루가 산재하여 있다. 읍성은 높이 2.5m에 주위 1,371m인 석성으로 매우 견고한 성곽이다. 읍에서 서쪽으로 28㎞ 거리에 있는 서북보는 사방 467m에 높이 3m로 된 석축으로 270여명의 병사가 병마를 거느리고 주둔할 수 있었다 한다.

사하북보(斜下北堡)는 읍에서 서쪽으로 15㎞ 지점에 있으며, 주위는 258m에 높이는 1.5m의 석축으로 된 성이며, 성종 26년에는 만호와 병사 180인이 주둔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읍에서 36㎞ 떨어진 곳에 덕만동소보가 있고, 이 덕만보는 길주읍에서 북쪽으로 10㎞에 있다. 읍에서 북쪽으로 26㎞ 떨어진 지점에 있는 장군파보(將軍坡堡)는 석축으로 된 성으로, 주위가 443m에 높이는 2.42m가 된다.

1605년(선조 38)에 순찰사 이시발(李時發)이 사하북보를 이곳으로 옮겨서 이 산성을 다시 축성하였다고 전하기도 한다. 이 밖에 불교 사찰로 고려 때 세웠다는 보현사(普賢寺)와 광적사(廣積寺)가 있다.

교육·문화

이 고을의 옛 교육기관으로는 길주향교와 지방에 산재한 사설 서당 등이 있다. 길주향교는 1612년(광해군 4)에 건립하기 시작하여 1639년(인조 17)에 완성된 전형적인 향교로, 대성전·명륜당·동무·서무·동서재·전사청 등을 구비하고 있다.

신교육기관으로는 1911년 길주공립보통학교가 처음 개교하였고, 1921년 동해공립보통학교와 그 이듬해에 덕산공립보통학교(德山公立普通學校)가 설립되는 등 1면 1교의 교육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1924년에 길주공립농업학교가 창설되어 많은 농업 지도자를 양성하였다.

길주읍이 공업 도시로 발전함에 따라 길주공업보습학교(吉州工業補習學校)가 설립되었다. 1945년 현재 군내에는 유치원 2개소, 초등학교 13개교, 사립실업학교 2개교, 농업중고등학교 1개교가 있다.

종교 상황은 함흥 구주사의 말사인 보현사(普賢寺)·원통암(圓通庵)·광적사(廣積寺) 등 3개 사암의 불교 사찰이 있고, 개신교 교회 3개가 있다.

이 고장에는 지명유래담·사찰관련설화·식물명유래담 등이 전하는데, 그중에서 〈보현사 나한전설〉과 〈왕거미전설〉이 유명하다.

〈보현사 나한전설〉은 이 절의 5백나한을 안변 석왕사로 옮길 때의 이야기이다. 한 나한을 옮길 때마다 치재를 올리다가 마지막에는 두 나한을 한꺼번에 치재하였으므로, 그중 한 나한이 재공에서 빠진 노여움으로 평안북도 묘향산의 보현사로 가 버려 석왕사에는 5백나한 중 한 자리가 비었다 한다.

설봉산의 광적사에는 〈왕거미전설〉이 전한다. 이 절의 아름다운 비구니가 밤마다 찾아오는 정체불명의 침입자로 인해 잉태하여 만삭이 되었다.

이를 알고 그 사람의 의대에 몰래 실 꾸러미를 매달게 하였다. 이튿날 실을 따라 가서 호숫가에 백년 묵은 왕거미가 있는 것을 발견하여 때려죽였다. 그 뒤 비구니는 아들을 낳아 거미 주(蛛)에서 충(虫)을 뺀 주씨(朱氏)로 성을 삼았는데, 뒷날 명나라 시조 주원장이 되었다고 한다.

민요로는 함경도의 대표적인 민요 〈애원성〉이 애조를 띤 사설과 가락으로 불렸다. 여음에 “에 얼사좋다 얼널널 너리고 상사듸아”를 쓴 것도 있는데, ‘상사듸아’는 농업노동요의 대표적인 여음으로 〈애원성〉이 농업노동요로도 불렸음을 말해 준다. 목동들이 “여우미여 여―염여/미여 여―염여……”라고 송아지를 불러 모으는 노래가 특이하고, 이 밖에도 〈달거리노래〉·〈한가위노래〉·〈호기대감〉 등도 불렸다.

민속놀이는 지난날 궁술놀이·석전·사자놀음 등이 있었으나, 오늘날은 정월의 윷놀이·연날리기·널뛰기·쥐불놀이, 단오의 씨름·그네뛰기·널뛰기 등과 추석의 그네뛰기·연날리기·널뛰기 등 다른 지방과 대동소이하다.

윷놀이는 기후 관계로 실내에서만 행하고 윷가락은 대부분 강낭콩을 쓰며 나무윷은 희소하다. 그리고 부녀자들은 달맞이윷점이라 하여 청아수를 소반에 떠 놓아 제단으로 삼고, 한쪽 면을 깎아 흰 칠을 한 나무윷 4개와 당년수책(當年數冊)이라는 점서(占書)를 갖추어 놓은 다음, 고령자로부터 차례로 제단 앞에서 보름달에 절하고 세 번 윷을 굴려서 그 백면의 수로 책에 의하여 그해의 신수를 가리며, 길점이 나오면 한 마당 춤추는 풍습이 있다.

또, 남자는 산윷[算柶] 또는 보습윷[犂柶]이라 부르는 윷놀이를 하며, 이는 두 사람이 대항하여 먼저 콩을 도에 1개, 개에 4개, 걸에 9개, 윷에 16개, 모에 25개를 놓고 각기 윷을 굴려서 나타난 수만큼 콩을 집으며, 만일 그만큼 콩이 없으면 도리어 자기 콩을 보내는데, 이리하여 1회전이 끝나면 콩의 수에 따라 승부를 결정한다.

동제로는 산신제가 있다. 대개 정월 초정일(初丁日) 또는 중정일(中丁日)에 치제하며, 그 목적은 마을에 맹수가 횡행하여 인축을 해치거나 괴질이 유행하여 민심을 흉흉하게 하는 등의 모든 재앙에서 벗어나도록 산신령이 가호하여 달라는 민간신앙이다.

제단은 마을에서 가장 정결한 곳을 택하여 임시로 제단을 마련하고, 제수는 미리 선출된 소임 수인이 목욕재계하고 도가에서 준비하며, 우선 소나 큰 돼지를 잡는다. 제물은 소나 돼지머리와 시루떡·예주·백미·백포·백지 등을 올리며, 그 밖에 각 호에서는 정성을 들인 밥 한 그릇씩을 지어 제단에 바친다.

제사는 고령자 3인의 제관들이 차례로 분향·헌작·배례·고축·소지 등의 순서로 진행하며, 행사가 끝난 뒤에는 그 자리에서 음복이 있고 수육은 각 집에 고루 분배한다.

산업·교통

주된 산업은 농업으로, 남대천 유역의 넓은 평야는 관개시설이 잘되어 있어 많은 농작물이 생산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콩·조·보리·감자 등이며, 배·사과 등의 과수와 채소재배도 적당한 기후로 인해 많이 생산되고 있다. 특히, 가을배추는 우량 배추로 알려져, 광복 이전에는 서울까지 공급될 정도로 유명하였다.

이 밖에 농가 부업으로 축우와 삼베가 유명하여 길주소·길포는 전국에 이름이 나 있고, 길주소는 생우로 일본에까지 수출되었다.

지하자원으로는 백암·남계·성덕의 마그네사이트가 유명하며, 특히 임동·보전의 운모광은 질과 생산량에서 세계적인 광산이다. 이 밖에 석탄·흑연·금·은·납·구리 및 인회석 등 광산물이 풍부하다. 그 밖에 펄프·제지·인견·제재 공업 등이 발달하였다.

길주읍 시장은 당초 1일과 6일에 장이 열리는 정기 시장으로 길주소와 길포 거래를 주로 하였으나, 길주읍이 공업 도시로 변하게 되자 근대적인 상설 시장으로 발전되었고, 소와 말 등 가축류와 곡류·야채·과일·신탄·해산물·일용 잡화 등 각종 산물이 거래되는 큰 시장이 되었다.

용원시장은 군내 남부 해안 지방에 위치하여 곡류·가축·수산물 등의 거래가 많고, 재덕시장은 북부 교통의 중심지에 형성되고 부근에 가축의 방목장과 광산 지대가 있어서 가축·곡류·야채·장작·숯 및 임산물 등의 거래량이 많다.

교통은 길주·명천지구대를 통하는 함경선 철도, 고원 지대의 광산물·목재를 운반하기 위한 산업철도인 혜산선과 백무선이 부설되어 있어 편리한 편이다.

읍·면

[길주읍 吉州邑]

군의 동북부에 위치한 읍. 면적 113.95㎢, 인구 2만 8377명(1945년 현재). 읍 소재지는 길북동이다. 본래 길성면(吉城面) 또는 영북면(英北面) 등으로 불렸으나, 1938년 읍으로 승격될 때 지금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길주·명천지구대의 남단에 위치하고 남대천이 북에서 남으로 흘러 들어가 충적평야의 기름진 옥토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도내 남부의 농업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고 축산업과 과수·채소 등의 원예 재배가 발달되어 있다.

압록강·두만강 상류 처녀 원시림 개발과 군내 지하자원 발굴과 함께 이 읍에 북선제지의 펄프 공장과 도내 최대 규모의 제재 공장이 들어서고, 백암광산의 마그네사이트 채굴에 따라 마그네시아 클링커 및 마그네시아 연와 등 고급 내화물을 생산하는 공장이 건립됨으로써 일약 공업 도시로 발전되었다.

교통은 이 읍을 기점으로 혜산진에 이르는 길혜선 철도가 부설되고, 연이어 군내 백암역에서 분기되는 백무선 삼림철도가 개통되었으며, 읍내 북단의 명천군계 부근의 함경선 금송역 근처에 온수평온천(溫水坪溫泉)이 있는데, 유황천으로서 수량이 많고 수온도 높고 교통이 편리하여 찾아드는 욕객이 많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 공업보습학교 1개교, 여자상업학교 1개교, 농업중·고등학교 1개교가 있다. 길북(吉北)·홍수(紅繡)·영기(營基)·금송(金松)·봉암(鳳巖)·유천(柳川)·표봉(表峰)·길남(吉南) 등 8개 동이 있다.

[덕산면 德山面]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179.28㎢, 인구 2만 4301명(194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금천동이다. 서북부는 마천령산맥의 여맥이 뻗어 산악 지대를 이루고 있고, 남단 부근 학성군계에 설봉산(雪峰山, 668m)이 있다.

동남부는 남대천이 흘러 들어가고 길주·명천지구대의 초입에 위치하여 지세가 평탄하다. 동부 면계를 흐르는 남대천 유역은 충적평야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 쌀·조·보리·기장·수수·옥수수·콩·팥·강낭콩 등이 생산된다. 그 밖에 배추·무·양배추·당근·우엉·파·마늘·호박·참외·수박·오이·감자 등의 채소류와 배·사과·포도 등 과일 생산이 많다.

사료원이 풍부하여 양돈·양계가 성행하고 있다. 특히, 이곳에서 사육되는 소는 체격이 크며 지구력이 강하고, 번식률이 높은 북선소의 대표적인 우량종으로 전국에 이름이 나 있다.

농가 부업으로 누에치기가 성하며, 특히, 이곳에서 생산되는 삼베는 예로부터 길포라 하여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면내 위남동의 길주탄광은 그 매장량이 5천만 톤에 달하는 갈탄으로서 주로 명천군 내 영안인조석유공장의 원료로 공급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교가 있다.

금천(錦川)·대(大)·일신(日新)·덕신(德新)·탑양(塔陽)·신암(新巖)·백원(白元)·위남(渭南)·상하(上下)·문암(門巖)·양(良)·지산(芝山)·도목(都目) 등 13개 동이 있다.

[동해면 東海面]

군의 최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94,43㎢, 인구 1만 3966명(194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용원동이다. 서부 면계로 흘러 동해로 들어가는 남대천 하구의 넓은 충적평야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부의 명천군과의 경계에 약간의 낮은 구릉이 뻗어 있다.

토양이 기름지고 수량이 풍부하여서 일찍이 몽리면적 570㏊에 달하는 동해수리조합(東海水利組合)이 창설된, 도내의 주요 미곡 산지이다.

농산물로는 쌀·조·보리·콩·강낭콩·원두 등이다. 일찍이 유축농업에 힘써 소의 사육 두수가 많고, 이곳의 북선소는 전국적인 우량종이다. 농가 부업으로는 누에치기, 삼베의 직조가 성하며, 이곳 삼베는 옛날부터 길포라 하여 전국에 그 이름이 알려져 있다.

동해 연안은 해안선의 굴곡이 없어 어업 기지로 활용 가치는 적지만 남대천 하구 일대는 십리장정(十里長汀)의 해수욕장이다. 해당화 피는 백사장 후면에 노송이 우거진 송정(松亭)이 있고, 그 배후에는 군선대(群仙臺)·국화대 등 기암괴석이 우뚝 솟아 있으며, 아래에 원앙소가 있어 여름철이면 피서객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다.

면의 북쪽에는 다신산성(多信山城)의 옛터가 있고 그 남쪽 서부의 석성동에는 먼 옛날 여진인들의 성터가 있는데, 이곳은 임진왜란 때 관북 의병이 왜적을 무찌른 옛 전쟁터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가 있다.

용원(龍原)·동호(東湖)·불로(不老)·사계(斜溪)·용(龍)·창촌(蒼村)·석성(石城)·신호(新湖)·금성(錦城)·산성(山城) 등 10개 동이 있다.

[양사면 暘社面]

군의 최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486.32㎢, 인구 1만 103명(194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춘흥동이다. 마천령산맥에서 함경북도를 두만강변과 동해 쪽으로 갈라놓은 함경산맥이 분기되는 지역에 있기 때문에 두류산·백암산·고두산·만탑산·남설령·무산령(茂山嶺) 등 고산준령이 높이 솟아 있고, 남쪽에는 학무산(鶴舞山, 1,642m)이 우뚝 서서 험준한 산악 지대를 이루고 있다. 동부에는 만탑산 기슭의 여러 계곡에서 모여든 물줄기가 합쳐진 남대천이 흐른다.

마천령산맥의 좌우로 걸쳐 있는 백암역 부근의 마그네사이트광산은 총 매장량 36억만 톤의 세계 제1위를 자랑하는 광구이며, 이곳에서 채굴된 광석은 주로 길주와 성진의 내화벽돌 공장으로 공급된다.

축우 산지로도 이름난 곳이며, 동남부에 위치한 재덕(載德)대지에는 우량종인 북선소의 방목장이 있다. 남대천의 최상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기암괴석 사이로 물이 흐르는 남대계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교가 있다. 춘흥(春興)·양흥(暘興)·양곡(暘谷)·장흥(長興)·신풍(新豐) 등 5개 동이 있다.

[웅평면 雄坪面]

길주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88.42㎢, 인구 1만 253명(194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용남동이다. 면의 명칭은 길주군의 옛 명칭인 웅성(雄城)의 ‘웅’자를 따서 지었다.

길주·명천지구대의 남단에 남대천이 서부 면계를 북에서 남으로 흘러 들가는 하류에 위치하므로 충적평야를 이루고 있다. 토질이 비옥하고 관개사업이 잘되어 있어 농산물생산이 많은 편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조·보리·콩·강낭콩·수수 등이고, 콩은 알갱이가 굵고 유분이 적은 우량종으로 품질이 뛰어나다. 그 밖에 배추·양배추·무·당근·우엉·감자 등 채소류가 대량 생산되고, 과수 재배가 발달하여 배·사과·포도·복숭아 등이 산출된다. 농가 부업으로 생산되는 삼베는 예로부터 길포라 하여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또, 일찍부터 유축농업이 발달하여 이곳에서 사육되는 북선소는 체대·강건·온순하며 번식력이 왕성한 우량종으로 그 이름이 높다. 동남부에 위치한 길주·명천지구대 측면의 현무암대지에는 규조토의 제3기 퇴적암층이 배태되어 있고, 그 매장량이나 품질은 도내 제1위를 차지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와 사립실업학교 1개교가 있다. 용남(龍南)·남일(南一)·남양(南陽)·남이(南二)·용천(龍川)·쌍룡(雙龍) 등 6개 동이 있다.

[장백면 長白面]

군의 중앙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413.80㎢, 인구 2만 1317명(194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합포동이다. 서부 도계를 가로막은 마천령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북쪽 양사면과의 사이에 학무산이 높이 솟아 서북 지방은 산악이 중첩한 고지대를 이룬다. 면의 동쪽으로 남대천이 북에서 남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임동에 있는 포수광산(砲手鑛山)에서는 다량의 금운모가 산출된다. 그리고 이 면에는 부존량이나 품질이 세계적인 인상흑연(鱗狀黑鉛) 광산이 있다.

교통은 1930년대 초반에 길주읍에서 함경남북도의 오지를 연결하는 산업철도가 이곳을 통과하고 있다. 중앙부에 우뚝 솟은 칼산의 남쪽 성불산 기슭에 고찰 보현사가 있다. 사찰의 창건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이성계가 잠룡 시절 5백나한을 이 절에서 안변 석왕사로 옮겼다고 전해지며, 전각(殿閣)은 아직도 고색이 창연하다.

성불산 정상 부근에는 원통암이라는 수도원이 있고, 그 일대는 경관이 수려하여 특히 봄·가을에 소풍객이 많이 찾는다. 머루와 다래의 명산지로도 유명하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가 있다.

합포(合浦)·주남(洲南)·도화(桃花)·십일(十一)·영호(英湖)·십사(十四)·평륙(坪六)·용담(龍潭)·상팔(上八)·임(林)·신(新)·회남(晦南) 등 12개 동이 있다.

광복 후 변천

1952년 12월 행정구역 개편 때 남부 해안의 동해면을 화대군에, 북부의 양사면 일부를 백암군에 편입시키고, 나머지 지역으로 군의 행정구역을 개편하였다.

1954년 10월에는 길주읍에 유천리 일부를, 또 유천리 일부와 길주읍 일부를 병합하여 홍숙리로, 온천리 일부를 금송리로, 주남리 일부를 평욱리로, 영화노동자구를 유천리로 각각 편입하였다. 1967년 10월 용담리를 용담노동자구로 개칭하였다.

군의 동쪽은 명천군, 서쪽은 함경남도 단천시와 양강도 백암군, 남쪽은 김책시·화대군, 북쪽은 화성군·어랑군과 접하여 있다. 동경 128°58′∼129°26′, 북위 40°48′∼41°18′에 위치하며, 면적 1,030㎢, 인구 14만 6800여 명이다(1996년 현재).

행정구역은 길주읍과 영북(英北)·용담(龍潭)·주남(洲南)·일신(日新) 등 4개 노동자구, 쌍룡(雙龍)·봉암(鳳巖)·평륙(坪六)·상하(上下)·온천(溫泉)·금송(金松)·홍수(紅繡)·유천(柳川)·탑양(塔陽)·용성(龍城)·남양(南陽)·덕신(德新)·청암(靑巖)·문암(門巖)·금천(錦川)·임동(林洞)·합포(合浦)·십일(十一)·목성(木城)·신동(新東)·풍계(豊溪)·춘흥(春興) 등 22개 이로 되어 있으며, 군 소재지는 길주읍이다.

함경산맥과 백두산맥이 합쳐지는 북서부 지역에는 만탑산(2,205m)·만두산(2,009m) 등 높은 산들이 솟아 있어, 군의 다른 지역보다 높고 험한 산지로 되어 있다. 길주읍 일대는 분지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분지의 동부에는 장덕현무암대지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하천은 남대천과 그 지류인 사하북천·유위천·장흥천·금천천 등이 군의 중심부에서 합류하여 남쪽으로 흐르고 있으며, 남대천 유역에는 넓은 길주평야가 펼쳐져 있다.

또한, 금천천을 막아 조성된 문암저수지 등 3개의 저수지가 있어 길주평야의 농업용수로 이용되고 있다. 기반암은 화강암·제3기 혈암·역암·현무암 등으로 운모·규조토·석탄 등이 매장되어 있다. 토양은 갈색산림토가 대부분이다.

연평균 기온은 7.5℃, 1월 평균 기온은 ·7.6℃, 8월평균기온은 22.2℃이며, 첫서리는 10월 5일경, 마감서리는 5월 5일경에 내린다. 연평균 강우량은 650㎜이다.

산림은 전체 면적의 약70%를 차지하며 500m 이상의 고산 지대에는 주로 이깔나무·분비나무·가문비나무·참나무·박달나무·피나무·황철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만탑산 일대의 1,600m 이상의 높은 산지에는 가공주원료로 쓰이는 사슴이끼가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여러 가지 산채들과 약용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이 군은 비옥한 길주평야와 풍부한 지하자원을 바탕으로 농업과 광업이 발달하였다. 경지면적은 군 넓이의 30%로서, 도내에서 경지 비율이 제일 높아 곡물 생산을 위주로 하는 농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주요 곡물은 쌀·옥수수·콩 등이며, 예로부터 길주군은 콩이 잘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채소도 적지 않게 생산하고 있으며, 과일밭은 도 과일밭 넓이의 16.6%를 차지한다. 과일은 사과와 배가 기본을 이루며, 주로 남부 구릉 지대에서 재배된다.

길주배는 수확성이 높고 맛이 좋아 널리 알려져 있다. 축산에 있어서도 소·양·토끼·돼지·닭 등을 사육하고 있으며, 닭공장·오리공장 등이 있다. 누에고치 생산에 있어서는 뽕누에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임산자원과 함께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이와 관련된 공업이 발달하였다. 길주펄프공장이 현대적 설비로 재건, 확장되고, 길주합판공장이 대규모 목재 가공 기지의 하나로 발전하여 각종 목재 가공품을 생산하고 있다.

운모는 그 가공품인 운모 종이·운모판·운모 테이프 등 수십 종의 전기 절연물들과 통신 설비의 원자재로 이용되고 있으며, 규조토는 보온재와 세척재로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함북남부탄전에 속하는 길주군의 일신·덕신 일대의 탄광에서는 유연탄을 채굴, 생산하고 있다. 그 밖에 식료·일용품·의류·직물·지물·가구 등 지방 공장들이 건설되어 군내의 생활필수품을 공급하고 있다.

교통망으로는 전철화된 평라선(평양∼나진)이 군의 동남부를 통과하고, 길주청년역에서 백두산청년선(길주∼혜산)이 분기된다. 철도와 병행해서 평양∼청진 사이의 도로가 지나고, 화대와 백암을 연결하는 지방도로가 있다. 온천리에는 온수평온천이 있어 요양소로 이용되고 있다.

유물·유적으로는 1639년(인조 17)에 세운 길주향교가 현존하며, 이시애(李施愛)의 난과 관련된 맹월역터와 임진전첩비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공장대학인 길주공업대학과 길주제1고등중학교·길주제2고등중학교·길주여자고등중학교·봉암고등중학교 등이 있다. → 백암군, 화대군

참고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1981)
『길주군읍지』(정문사, 1983)
『길주군향토사』(길주군민회, 1983)
『함경북도지』(함경북도지편찬위원회, 1983)
『지방행정구역발전사』(내무부, 1983)
『이북5도30년사』(이북5도위원회, 1985)
『북한교육기관 및 문화재현황』(국토통일원, 1985)
『북한행정구역 및 산천지세』(국토통일원, 1985)
『북한문화재실태와 현황』(문화공보부문화재관리국, 1985)
『인물의 고향』-북한편-(중앙일보사, 1985)
『북한지지요람』(통일원, 1985)
집필자
조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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