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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여란(金如蘭)

    국악인물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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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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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본명은 분칠(粉七), 호는 향곡(香谷). 충청북도 옥천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고향인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城內)에서 살다가 경상남도 진주시 평거동으로 이사했으며, 그뒤 다시 서울 인의동과 봉천동에서 살았다.
    어려서부터 양금과 가야금 등의 악기와 판소리 및 시조를 배웠는데, 김봉이(金鳳伊)에게서 「심청가」를 배웠고, 정정렬(丁貞烈)에게서 오랫동안 「심청가」·「적벽가」·「춘향가」를 배웠다.
    민족항일기에 레코드판에 판소리를 취입한 적이 있고, 조선성악연구회와 창극단에서 활동하였다. 민족항일기 말기에는 향곡(鄕谷)에 은거해 있다가 광복 뒤 다시 창극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60년대초 판소리계에 나와 본격적인 활동을 하였다.
    1964년 12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그는 정정렬의 「춘향가」를 가장 순수하고 완벽하게 전창(全唱)하는 명창으로 평가받았으며, 박초선(朴初宣)·최승희(崔承希)·최영기(崔英基)·정금내(鄭今乃)를 후계자로 두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판소리소사  (박황, 신구문화사, 1974)

    • 『국악예술인명감(國樂藝術人名鑑)』 ( 이원기 ,국악계사,1961)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이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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