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상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 종사관과 병마절도사를 역임한 무신.
이칭
서백(瑞伯)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언양(彦陽)
출생지
충청남도 직산
주요 관직
병마절도사
내용 요약

김응상은 조선 전기 종사관과 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1578년(선조 11) 종계변무(宗系辨誣)의 임무로 명나라에 간 주청사 황림의 종사관으로 연경에 다녀왔다. 1583년(선조 16) 국왕 선조가 인재 천거령을 내렸을 때 곽흘이 추천하여 뽑혔다. 뒷날 병마절도사에 올라 함경도를 노략질하던 여진족의 침략을 막다가 전사하였다. 뒤에 좌부승지에 추증되었다.

정의
조선 전기 종사관과 병마절도사를 역임한 무신.
가계 및 인적사항

김응상(金應祥)은 충청도 직산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언양(彦陽), 자는 서백(瑞伯)이다. 아버지는 현감 김덕윤(金德潤)이다.

주요 활동

1578년(선조 11) 종계변무(宗系辨誣)의 임무를 띠고 명나라에 주청사(奏請使)로 간 황림(黃琳)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연경(燕京)에 다녀왔다. 1583년(선조 16) 국왕 선조비변사 주1들에게 인재 천거령을 내렸을 때 곽흘(郭屹)이 추천하여 뽑혔다. 임진왜란 때는 남쪽에서 활동하다가 1598년(선조 31) 3월에 영남지방에서 한성으로 돌아왔다. 뒷날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에 올라 함경도를 노략질하던 여진족의 침략을 막다가 유하(柳下)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좌부승지(左副承旨)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봉곡계찰방유집(鳳谷桂察訪遺集)』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오한선생문집(聱漢先生文集)』
『직산읍지(稷山邑誌)』

단행본

『천안군지』(천안군청, 1984)
주석
주1

조선 시대에 둔, 정삼품 상(上) 이상의 품계에 해당하는 벼슬을 통틀어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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