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 참전하여 순절한 무신.
이칭
봉호
해녕부원군(海寧府院君)
명보(明甫)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592년
본관
경주(慶州)
내용 요약

김희철은 조선 전기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 참전하여 순철한 무신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조헌의 휘하에서 비장(裨將)으로 출전하여 공을 세웠고, 금산전투에서 16인의 비장과 함께 전사하였다. 뒷날 조헌의 문인 박정량과 김승절이 만든 의총(義塚)에 묻혔다.

정의
조선 전기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 참전하여 순절한 무신.
가계 및 인적 사항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딸 공빈(恭嬪) 김씨가 선조의 후궁으로 임해군(臨海君)광해군(光海君) 두 왕자를 낳아 왕의 총애를 받았다.

주요 활동

무과에 급제한 뒤 사포서 별제(司圃署別提)에 올랐다. 1583년(선조 16) 사도시 첨정(司䆃寺僉正)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조헌(趙憲)의 휘하에서 주1으로 출전하여 크게 공을 세웠다. 무예가 뛰어났던 그는 금산전투에서 왜군과 육박전이 벌어졌을 때, 조헌의 휘하에서 김절(金節) · 변계온(邊繼溫) · 양응춘(楊應春) · 곽자방(郭自防) · 김헌(金獻) · 김인남(金仁男) 등 16인의 비장과 함께 혈전을 벌이다가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뒷날 조헌의 문인 박정량(朴廷亮)과 김승절(金承節)이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의사들의 뼈를 한곳에 모아 무덤을 만들고 의총(義塚)이라 부른 곳에 묻혔다. 관직은 상장(上將)에 추증되었다. 봉군호는 해령부원군(海寧府院君)이다.

참고문헌

원전

『국조보감(國朝寶鑑)』
『난중잡록(亂中雜錄)』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재조번방지(再造蕃邦志)』
『중봉선생문집(重峯先生門集)』

논문

계승범, 「공빈(恭嬪) 추숭(追崇) 과정과 광해군의 모후(母后) 문제」(『민족문화연구』 48, 민족문화연구원, 2008)
주석
주1

조선시대에 감사(監司)ㆍ유수(留守)ㆍ병사(兵使)ㆍ수사(水使)ㆍ견외 사신(使臣)을 따라다니며 일을 돕던 무관 벼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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