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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흥학회(大韓興學會)

근대사단체

 1909년 일본 동경(東京)에서 조직되었던 한국유학생 통합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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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1909년 일본 동경(東京)에서 조직되었던 한국유학생 통합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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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당시 일본 유학생들은 1905년태극학회(太極學會)를 비롯해, 1906년공수학회(共修學會)·낙동친목회(洛東親睦會)·광무학회(光武學會)·대한유학생회(大韓留學生會), 1907년 호남학계(湖南學稧)·동인학회(同寅學會)·한금청년회(漢錦靑年會) 등 여러 단체를 설립하였다.
그 뒤 1908년 태극학회와 공수학회를 제외한 여타 단체를 통합한 대한학회(大韓學會)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1909년 1월 대한학회와 태극학회가 주축이 되어 공수학회와 새로 성립된 연학회(硏學會)를 합하여 대한흥학회를 발족시켰다.
영역닫기영역열기기능과 역할
대한흥학회는 15장 39조로 된 회칙과 34개조의 세칙, 그리고 13개조의 평의회 회칙, 8개조의 집행임원회 회칙 등 세밀한 규정을 마련하였다. 회칙에 명시된 목적은 ‘돈의연학(敦誼硏學), 국민의 지덕계발(智德啓發)’이라 하여 친목단결·학술연마·국민교육계몽 등 유학생 단체들이 공통으로 표방하던 목적과 동일하였다.
본회의 부근에 거주하여 일반회원의 임무를 이행할 수 있는 자는 입회절차를 거치지 않고 통상회원으로 간주하도록 되어 있었다.
조직에 있어서는 회장·부회장 각 1명, 평의원 25명, 총무원·총회서기 각 2명, 평의회·집행위원회서기 각 1명, 간사원·회계부원 각 5명, 편찬부원 10명, 출판부원·교육부원·토론부원 각 5명, 사찰부원·운동부원 각 7명(사찰부원은 뒤에 20명으로 증원)으로 되어 있고, 평의원이 겸임하는 경우가 많았다.
회장단은 초대 회장·부회장에 채기두(蔡基斗)·최린(崔麟)이 각각 선출되었다. 그리고 회칙에 따라 4월과 10월 연 2회에 걸쳐 임원이 개선되어 2대 회장단에 문상우(文尙宇)·김지간(金志侃), 3대에는 이창환(李昌煥)·박병철(朴炳哲), 4대에는 최창조(崔昌朝)·고원훈(高元勳) 등이 역임하였다.
이들은 인쇄기를 구입하여 동경유학생 감독부 내 대한흥학회 출판부를 만들고, 1909년 3월 A5판 학보 1호를 창간한 이후로 1910년 5월 20일자 13호로 종간될 때까지, 매월 2,000부씩 발행해 대부분을 국내에 배부하였다.
『대한흥학보』에 게재된 1909년 9월말 흥학보구람인통계표(興學報購覽人統計表)에 의하면, 국내 총 구독자 수는 508명이었고, 도별로는 함경도 120명, 평안도 108명, 황해도 60명, 경기도 59명, 전라도 39명, 경상도 26명, 충청도 15명, 강원도 8명으로 관서·관북 지방이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국내에 함경도 영흥, 평안도 영유·용의·성천 등 4개 지회를 설립했는데, 태극학회에서 인수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대한학회나 대한흥학회가 모두 일본 유학생들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움직임이었으나, 대한학회의 실패를 바탕으로 다시 통합을 시도해 성공을 거두었고, 그들의 활동은 국내의 애국계몽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구한말재일본한국유학생단체운동(舊韓末在日本韓國留學生團體運動)」 ( 정관 ,『대구사학(大丘史學)』 25,1984)

  • 대한흥학보(大韓興學報)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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