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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사상(道家思想)

도교개념용어

 노자와 장자의 허무·염담·무위 등이 옳다고 여기는 도교교리.   철학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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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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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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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장자의 허무·염담·무위 등이 옳다고 여기는 도교교리.철학사상.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도교와 도가사상은 엄밀한 의미에서 구분된다. 그것은 전자가 종교사상이요, 후자가 철학사상이라는 점도 있지만, 두 사상은 애당초 다른 진리관에서 출발하여 전연 별개의 사상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도교는 고대의 민간신앙을 기초로 노장사상·역리(易理)·음양·오행·참위(讖緯)·의술·점성, 그리고 불교와 유교사상까지 받아들여, 심신의 수련을 통한 불로장생의 탐구와 기복(祈福)을 통한 현세이익을 추구하여 나가는 종교현상이다. 이를 크게 수련도교와 기복도교 또는 과의(科儀)도교로 나누어 보기도 한다.
그러나 도가사상은 이와는 달리 노장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철학사상으로 인간의 현실적 타락과 무지의 근거를 찾아 그것을 척결해 내고, 자연의 실상을 깨달은 참지혜를 통하여 무위(無爲)의 삶을 추구하는 사상 경향을 말한다. 이를 보통 무위자연사상이라고도 한다.
우리 나라에 도가사상이 전래된 것은 삼국시대이다.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에는 624년(영류왕 7)에 들어왔고, 신라와 백제에도 그 무렵을 전후하여 유입되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도가사상이 신도사상(神道思想) 내지는 선도사상(仙道思想)으로 대표되는 민족고유사상과 자연풍류사상의 바탕 위에서 도교와 분명한 구분 없이 혼합된 형태로 받아 들여 이해되어 왔다.
이와 같은 경향은 수용 초기 삼국시대부터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어왔으니, 우리 나라의 도가사상을 굳이 도교와 구별해서 논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도 있다.
그렇지만 여말 선초 성리학의 학문적 구명과 더불어 노장학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새로이 일어난 사실은 주목해야 한다. 도교의식이나 연단법(煉丹法)과는 다른 차원의 도가사상에 주목하게 되었던 것이다. 예컨대, 도교와 구별되는 우리 나라의 도가사상은 원칙적으로 여말선초에 성리학을 부각시키기 위해 이단(異端)의 사유를 구명하고자 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그 이전까지 도가사상은 유교나 불교처럼 뚜렷한 자기 모습의 사상성을 드러내지 못한 채 민간신앙에 근거를 둔 미신적 종교현상으로만 존속해왔을 뿐, 한번도 학문 대상으로서 심각한 문제거리로 대두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 말은 그 이전 고려시대까지의 사상 속에서 도가사상의 실마리를 전혀 찾을 수 없다거나, 도가의 체계적인 이해와 정립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도교와 도가사상이 함유된 다양한 종교현상 속에서, 풍수·도참 사상 특히 단학파(丹學派)의 도맥(道脈)을 형성한 수련도교의 인물과 사상 가운데서 도가철학의 요소를 찾아 새롭게 이해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 구체적인 작업은 앞으로 새롭게 정립해야 할 우리 나라 철학계의 과제이다.
도가철학 내지 도가사상은 그저 막연히 도교라고 할 때와는 달리 노장사상에 대한 철학적 이론을 학문적으로 문제삼아 다룬 것만을 의미한다. 도교와 도가사상의 실질적인 구분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겠다.
도가사상, 즉 노장철학에 대한 학문적 관심은 조선 건국의 주도적 인물인 정도전(鄭道傳)의 「심기리편 心氣理篇」이라는 짤막한 논문과 그 논문에 대한 상세한 주석을 달고 서(序)·발문을 붙인 권근(權近)의 해설에서 처음 찾아볼 수 있다.
이 논문의 내용은 『불씨잡변 佛氏雜辨』과 더불어 이단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분석인데, 참다운 진리탐구의 학문이 무엇인가를 천명함으로써 고려 말에 전래되기 시작한 ‘송학’, 즉 성리학의 학문적 기반을 공고히 하는 데 목적을 둔 저술이었다. 여기서 이단은 노(老)·불(佛)을 의미한다. 도가에 대한 학문적 관심은 이단사상으로 비판받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비판은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확실한 이해와 연구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 비판이 비록 ‘이단’임을 증명하여 뿌리 뽑기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일단 그 사유형태를 학문 영역 안으로 끌어 들여야 하는 것이다. 학문적 이해와 연구가 이루어진 바탕 위에서라야만 그 비판은 합리적 설득력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단을 막고 ‘올바른 학문’, 즉 정학(正學)인 유학을 천명하려는 확실한 목적의식에서 쓰인 것이기는 하지만, 정도전의 「심기리편」은 유(儒)·불(佛)·도(道) 삼가(三家)의 사상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비교, 검토한 뛰어난 저작이다. 일관성 있는 논리와 이해의 깊이는 유학의 분명한 자기 위치를 확보하고 있으며, 도가사상에 대한 이해의 깊이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정도전은 삼가사상의 핵심적인 문제를 불가(佛家)는 심(心), 유가는 이(理), 도가는 기(氣)로 파악하였다. 다시 말해 불가는 심학(心學)으로, 유가는 이학(理學)으로, 도가는 기학(氣學)으로 규정한 것이다. 우리 나라 도가사상의 학문적 출발은 이렇게 기철학(氣哲學)으로 성격이 규정되는 데서 시작되었다.
그 ‘기’는 성리학에서 말하는 ‘이기(理氣)’에서의 ‘기’와 비슷한 개념으로 형이하의 현상적 존재 일체를 의미하였다. 성리학에서 ‘이’는 그러한 현상적 존재의 본질이자 원리로 ‘기’보다 한 차원 높은 실재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도가는 우주와 인간의 여러 현상이 ‘이’에 의해 존속되는 것임을 알지 못하고 ‘기’만을 알고 논하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정도전은 비판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도가철학을 유가의 이기구조에서의 ‘기’, 즉 형이하의 현상적 존재만을 전부인 것으로 인식하는 철학이라고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가에서 다루는 ‘기’가 과연 그러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 도가의 ‘기’는 ‘이’와 상대가 되는 ‘기’의 의미를 지닌다기보다는 오히려 유가의 ‘이’ 이상으로 모든 것의 근원인 형이상적 실체이며 본질인 동시에 ‘현상 그 자체’인 궁극적 실재이다.
유가의 입장에서 보면 ‘기’에 대한 의미분석은 형이하적인 ‘기’, 경험 가능한 것의 요소 이상일 수 없는 한계를 지닌다. ‘기’는 ‘기’요 ‘이’일 수 없는 이상, 유가적 사념 속에서는 ‘기’가 근원적·본질적일 수 없으며 보편적 존재일 수도 없었다. ‘기’는 특수이고 개체적이며 형이하의 존재로 인식되었다. 바로 여기에 ‘기’ 개념에 대한 유가적 이해의 한계가 있다.
도가의 ‘기’ 개념과 유가의 개념구조 내에서의 그것은 동일한 것이 아님을 미처 생각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 없는 ‘기’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유가의 굳건한 입장이다. 예컨대, 도가에 대한 비판은 “노장이 ‘기’만을 말하고 ‘이’를 말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가해졌다.
정도전 이후 조선시대의 사상적 풍토는 표면적으로는 계속 도가사상을 배척의 대상으로 삼아 왔으나, 도가의 기론(氣論)을 어떤 형태로든 받아 들여야 하는 운명에 처하여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기’ 없는 ‘이’만을 문제삼을 수 없는 것이 성리학이고 보면, 기론은 유가철학이 다루어야만 하는 자기 운명을 동시에 지녔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도가철학의 실재는 ‘부정되는 동시에 긍정의 소지를 항상 보유하면서’, 때로는 적극적인 수용의 양상으로, 때로는 유가적인 ‘기’와는 다른 새로운 기의 의미를 탐색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철학적 수용이라 함은 막연한 사상성의 침투가 아니라 이론적인 학문적 이해로 들어와 문제가 된 경우를 의미한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도가사상은 표면적으로는 성리학과 아무런 관련도 맺지 못하고 부정적으로만 평가되어 뿌리째 뽑혀 나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도가의 ‘기’를 ‘이기’와 연결된 ‘기’의 의미로 파악하는 것부터가 자기수용의 터전을 마련하고 있었던 셈이라고 할 수 있다.
권근은 “하늘이 음양오행으로 만물을 화생(化生)하는 질료가 ‘기’이다. 인간도 기를 받아 생(生)하는데 이 ‘기’는 형이하의 것이다.”라는 주희(朱熹)의 말을 이용하면서, 도가철학은 바로 이 ‘기’를 문제삼아 나간 철학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 기는 반드시 ‘이’가 있어야 존립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유가에서 인지된 ‘이’의 개념이다.
‘기’의 운동을 규정하는 본원은 ‘이’에 있다는 것이다. 이 ‘이’에 근거를 둔 현상은 질서를 보유하며, 이 규범이 생의 의미인 자기질서[道德]라는 가치의 영역을 이룬다. 현상적 존재의 의미는 ‘이’가 부여한다. 그것이 다름아닌 의(義)요, 덕(德)이요, 미(美)요, 선(善)이요, 성(性)이요, 정(情)이다.
그러나 ‘기’만을 문제삼는 도가에서는 현상적 실상이 무엇이며, 존재성이냐 비존재성이냐가 문제이지, 현상적 존재의 ‘가치론적인 의미’, 즉 선악과 시비를 깊이 따지지 않았다. ‘기’는 그 자체로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다. 그저 ‘현상 자체’일 따름이다. 의미는 부여하는 바에 따라 변하는 것이니 가치의 절대적인 표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여 문제삼지 않았다.
그런데 유가에서는 바로 ‘존재의 의미’를 묻고 탐색하여 그것을 행위의 준칙으로 삼고자 한다. 현상적 존재를 기반으로 하여 찾아낸 근거·원리·규범이 다름아닌 ‘이’이다. 이때 ‘이’는 어디까지나 ‘근거’이지, 그것이 그대로 의·덕·미·선은 아니다. 그러한 가치론적 의미들은 모두 현상적 존재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개념들이니 유가철학은 ‘이’ 못지않게 ‘기’를 중요시 하였다.
‘기’는 현상적 존재성이다. 도가사상에 대한 비난도 여기에 근거를 두고 체계 내부로 수용하는 것도 이 점에 입각해 있다. 도가에 대한 비난은 생의 의미를 찾아 들어 갈 근거를 설정하지 않았다는 데 있으며, 도가의 관점에서는 생은 생 그대로 용인되어야 할 전부이다. 이렇게 보면 유가의 비판과 부정에도 불구하고 도가를 ‘생의 철학’으로 수용할 길이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생은 현상적 존재의 개체 개체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형이하의 ‘기’이다. 의미없는 생은 생이 아니라 할지 모르나 도가에서는 오히려 ‘자연스러움’을 ‘기’의 본 모습으로 보고 목적이나 의도를 위하여 ‘의미’를 추구하는 것을 위험하게 여겼다. ‘몸은 죽은 나무같이 해야 하며, 마음은 식은 재처럼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유가는 생을 무조건 용인하지 않고 반성을 통해 그것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 나갔다. 생은 의미가 부여될 때 비로소 가치 있는 것이 된다고 인식하였던 것이다. 도가철학은 그러한 인위적 의미부여를 거두었을 때 비로소 생이 온전해진다고 보았다.
‘기’의 문제가 화생만물(化生萬物)하는 현상적 존재에서 다루어지는 생의 철학이었기에, 도가사상에 대한 기철학적 측면의 연구와 이해, 수용은 기론을 더욱 분명히 하여 ‘이’의 존재론적 의미를 검토하고 다지는 데 기여하였다.
도가사상의 학문적·이론적 논구는 여말선초에 유자(儒者)들의 이해와 비판에서 비롯되었다. 우리 나라 도가사상은 이를 통하여 성립되었다. 도가에 대한 기철학으로서의 파악은 그 동기가 도가사상에 대한 긍정적·동조적 이해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시 지배이데올로기로 강력하게 요구되었던 성리학의 수용과 정착에 이바지하고자 하였던 비판의식에 있었다.
논박, 배척, 부정하기 위하여 도가를 살펴보고 그 취약점을 찾아내려 애썼던 것이다. 따라서, 그 논구와 이해의 방법은 출발부터 유가적인 사유영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해의 자기 한계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를 통해서 우리 나라 도가의 실질적 내용을 비로소 형성하였다는 점에서 사상적·철학적 의의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도가는 ‘기철학’이라는 사실로 하여 배척되고 평가 절하되었으나, 뒤집어 보면 바로 그 점이 유가에 수용될 여지가 있었던 곳이다. 도가의 기론이 유가의 ‘이기구조적 사유’에 끼친 영향을 염두에 두고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철학으로서의 이해와 파악이 우리 나라 도가사상의 특질로 지적될 수 있겠다.
서경덕(徐敬德)에 이르러 양상이 좀 달라진다. 지금까지 이해되어 온 유가적 사유체계 내의 ‘기’가 고식성을 탈피하여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된다. ‘이’와는 무관하게 독립적·자율적으로 활동하는 ‘기’의 본질과 근원을 다룬 것은 획기적인 전환이었다. 서경덕은 이렇게 도가의 기 개념을 깊이 이해하고, 유가적 이기 개념을 철저히 검토한 바탕 위에서 자신의 독창적인 체계를 구축해 나갔다.
이이(李珥)는 노자(老子)를 새롭게 재평가하여 독자적인 주석과 편찬의 성과인 『순언 醇言』을 남기고 있다. 조선 후기에 민간에 음성적으로 만연하던 도가사상을 깊이 우려한 한원진(韓元震)은 장자(莊子)의 사상이 철저한 오류임을 밝히려고 『장자변해 莊子辨解』를 지었다.
박세당(朴世堂)은 무조건 비판을 일삼거나 유가와 배치되는 부분을 삭제하는 편법을 택하지 않고, 유가적 입장에 튼튼히 서서 『도덕경』과 『장자』를 차근차근 주석한 희귀한 전통을 수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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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송항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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