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은 1896년에 개점한 박승직상점이 모태가 되어 출발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100년이 넘는 장수 기업으로 기록되고 있다. 창업자 박승직은 보상부으로 장사 수완을 익힌 다음 종로 4가 배오개에 포목점을 열었는데, 불과 몇 년 사이에 동대문과 종로 일대에서 ‘배오개 거상’이라 불릴 만큼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1915년 박승직상점은 우리나라 최초의 화장품인 ‘박가분(朴家粉)’을 제조해 판매하였다. 이 제품은 박승직의 아내 정정숙이 만든 화장품인데,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1920년대에는 화장품 제조본포의 여직공만 30여 명이 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박승직상점은 1925년 주식회사로 개편하였는데, 당시 박승직상점㈜의 1주당 주식 가격은 50원으로 총 1,200주의 주식을 발행하였다. 1933년에는 일본인이 국내에 세운 소화기린맥주주식회사의 일부 주식을 인수하였고, 그러한 인연으로 소화기린맥주의 대리점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박승직상점은 폐쇄되었고, 박승직의 아들 박두병이 한 해 뒤인 1946년 말에 두산상회(斗山商會)를 설립하였다. ‘두산’이란 상호에는 ‘한 말 한 말 쌓아 산 같은 큰 기업을 이룬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박두병은 박승직상점 시절 맥주 대리점을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미 군정청에서 관리하던 소화기린맥주의 지배인이 되었고, 1948년 2월 일본식 이름을 바꾸어 상호를 동양맥주주식회사로, 상표도 ‘OB(Oriental Brewery)’로 변경하였다. 같은 해 7월에는 귀속 재산 관리제도가 바뀌면서 박두병이 정식으로 동양맥주주식회사 대표 취체역이 되었다.
1953년에 두산상회는 상호를 두산산업으로 바꾸어 본격적으로 무역업을 시작하였다. 1960년에는 두산건설의 전신인 동산토건을 설립하였고, 같은 해에 연합뉴스의 전신인 합동통신을 인수하였다. 그리고 1967년에는 두산건설 메카텍 사업부의 전신인 윤한공업사를 설립하여 기계공업 분야에 진출하였다. 1969년 박두병 회장은 지병을 이유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여 정수창이 동양맥주 사장에 취임하였다. 그리하여 1970년대 초부터 정수창 회장이 OB그룹을 이끌며 전문 경영인 체제가 시작되었다. 1974년에는 두산전자의 전신인 한국오크공업과 두산개발을, 1975년에는 두타몰의 전신인 동양농산을 설립하였다. 1977년에는 방직공장 부품 업체로 출발한 정공사를 인수하여 두산기계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그리고 동양맥주의 브랜드인 ‘OB’를 그룹명칭으로 써서 OB그룹으로 불리다가 1978년부터 두산그룹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같은 해에 두산연강재단의 전신인 연강학술재단을 설립하였다. 1978년에는 대한유리를 합병하여, 1979년부터 두산유리주식회사로 상호를 바꾸었다. 1979년에는 종합 광고회사인 오리콤과 알루미늄 캔 생산업체인 두산제관을 설립하였다. 이 시기 무역회사인 두산산업은 수출 1억 달러를 돌파하였다.
두산그룹은 1980년대에 이미 한국 경제를 이끄는 대표 기업으로 성장해 있었다. 1981년부터 전문경영인체제를 넘어서 박두병 회장의 장남 박용곤이 3세대 경영인으로 두산그룹 회장이 되었다. 박용곤 회장은 1980년대에 각종 계열사 설립과 인수 · 합병을 통하여 그룹을 크게 신장시켰다. 1980년에 두산그룹은 한국 최초의 위스키 생산업체인 오비씨그램을 설립하였으며, 1982년에는 한국에서 프로야구가 처음 시작되면서 OB 베어스를 창단하였다. 1983년에 두산그룹은 본사를 을지로로 이전하였으며, 1985년에 두산동아의 전신인 동아출판사와 동아인쇄를 인수하였다. 1987년에는 두산큐벡스의 전신인 레저사업체 두산기업을 설립하였고, 1988년에 덕수종합개발을 인수하였다.
두산그룹은 1990년대에 들어와 어려움을 겪었다. 1991년 3월에 두산전자 구미공장에서 페놀이 유출되어 낙동강이 오염된 사건이 일어났다. 박용곤 회장은 페놀 사건 한 달만인 4월에 모든 책임을 지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러한 수난 속에서도 두산그룹은 1991년 두산종합기술원을 설립하였고, 1992년에는 기업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하여 새로운 경영이념 및 사원 정신을 제정 · 선포하였다. 1993년에 두산아트센터의 전신인 연강홀을 개관하였고, 1994년 두산정보통신을 설립하였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두산그룹에 일대 위기가 찾아왔다. 1995년의 적자 규모가 9.000억 원에 이르렀으며, 부채비율도 625%나 되었다. 이는 1990년대 초 페놀 사건의 여파와도 무관하지 않은 일이었다. 이때 두산그룹은 23개 계열사를 ㈜두산, 두산산업개발, 두산포장, 오리코 등 4개사로 통합하였다. 이에 따라 9개 계열사를 통합한 ㈜두산이 1998년에 출범하였다. 이미 3년 전부터 구조조정을 해온 두산그룹은 1998년 IMF 외환위기를 맞아 그룹의 주력 기업인 OB맥주와 을지로 사옥을 매각하였다.
1990년대 말 구조조정으로 유동성 위기를 극복한 두산그룹은 2000년 벤처기업 창업투자 및 기업 구조조정 투자 전문회사인 네오플럭스를 세워 미래산업에 가치를 둔 기업들을 인수 · 합병하는 전략적 경영을 펼쳐나갔다. 2001년 한국중공업을 인수하여 두산중공업으로 상호를 변경하였으며, 2004년에는 두산건설이 현대그룹 계열사인 고려산업개발을 인수하여 상호를 두산산업개발로 바꾸었다. 또한 2005년에는 대우종합기계를 인수하여 두산인프라코어로 회사명을 개칭하였고, 2006년에는 연합캐피탈을 인수해 두산캐피탈로 새롭게 탈바꿈시켜 21세기에 걸맞은 두산그룹의 사업군으로 확장시켜 나갔다. 두산그룹은 200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해외 기업들을 인수하는 데 주력하였다. 2005년에 미국 AES사의 미주 수처리 사업 부문을 인수하고, 담수 플랜트의 주축인 RO(역삼투압방식) 분야의 원천기술을 확보하였다. 이 회사는 두산하이드로테크놀로지로 거듭났다. 그리고 2006년에는 두산중공업을 통하여 두산밥콕의 전신인 영국의 발전설비 원천기술업체 미쓰이밥콕(Mitsuibabcock)과 루마니아의 최대 발전설비 소재업체인 크배르너 IMGB를 인수하였다. 이 회사는 두산IMGB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2007년에도 두산인프라코어를 통하여 미국의 소형건설장비 회사인 잉거솔랜드사의 밥캣, 어태치먼트, 유틸리티 등 3개 사업부문을 49억 달러에 인수하였다. 또한 같은 해에 미국 CTI, 중국 연대유화기계도 인수하는 등 해외사업부문을 크게 확충해 나갔다. 2008년에는 동명모트롤(현재 ㈜두산 모트롤)과 독일 물류장비 전문업체 ATL을 인수하였다. 또한 같은 해에 학교법인 중앙대학교 재단에 참여하였고, 두산인프라코어 중국 옌타이 공장을 준공하였다. 2009년에 ㈜두산은 사업형 지주회사로 전환하였으며, 체코 발전설비업체 스코다파워를 인수하였고, 2023년에 두산인프라코어는 글로벌 인프라 지원사업의 핵심이 되자는 염원을 담아 HD현대인프라코어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2010년대에 들어서서도 두산그룹은 해외사업의 영역을 크게 넓혀 나갔다. 2010년 두산파워시스템을 설립하였으며, 2011년에는 세계 일류상품 총 19개 품목을 보유하게 되었고, 중국에 소형 굴삭기 공장을 준공하였다. 2012년에도 ㈜두산 모트롤 중국 장인공장과 ㈜두산 전자 창수공장을 준공하였다. 아울러 같은 해에 영국 수처리 업체 엔퓨어를 인수하였다. 2015년에 영국의 지게차 판매 · 대여 업체 러시리프트를, 광고회사 ㈜한컴을 인수하였다. 2016년에는 두산중공업이 원에너지시스템즈를 인수하여 두산그리드텍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두산그룹은 1981년 3세대 경영인 박용곤 회장을 필두로 하여 박용오 · 박용성 · 박용현 · 박용만 회장 등 형제경영 시대를 거쳐, 2016년 3월 박용곤 회장의 장남이 그룹 회장이 되면서 4세대 박정원 회장 체제가 되었다. 두산그룹은 6개의 상장 회사와 19개의 비상장 회사를 포함하여 총 25개의 계열사로 구성되어 있다.
2015년 1조 7,008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던 ㈜두산은 2016년 504억 원의 순이익을 창출하였다. 두산중공업은 7,911억 원, 두산인프라코어는 4,908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였다. 두산그룹의 과제였던 두산밥캣 IPO(기업공개)도 성공을 거둬 9,000억 원 상당의 신규 자금을 마련하였다.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의 부채비율은 2015년 말 각각 288%와 266.8%에서 2016년 말 264%와 190.8%로 개선되었다. 두산건설의 부채비율도 같은 기간 198.8%에서 184.6%로 낮아졌다.2020년 3월 두산중공업은 보통주추가상장 되었으며, 두산건설은 상장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