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병 ()

매병
매병
공예
물품
입이 작고 어깨가 팽만하며 동체(胴體)가 길쭉한 형태의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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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매병은 입이 작고 어깨가 팽만하며 동체가 길쭉한 형태의 그릇이다. 매병이라는 명칭은 매화꽃을 꽂는 화병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용어이다. 매병은 술·물 등의 액체를 담는 그릇으로, 고려시대에서 조선 초까지 사용되다 사라졌다. 청자와 백자로 만들어졌으며 특히 고려 청자매병은 뛰어난 작품이 많다. 고려 청자매병은 형태와 문양이 다양하다. 문양은 연꽃·모란·국화 무늬 등이 대표적인데 화려하게 묘사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매병은 대부분 도자기이다. 그 때문에 고려 청자매병은 좋은 품질의 청자를 생산하던 가마터에서 주로 만들어졌다.

정의
입이 작고 어깨가 팽만하며 동체(胴體)가 길쭉한 형태의 그릇.
개설

매병(梅甁)은 고려시대에서 조선 초기까지 술 · 물 등의 액체를 담는 그릇으로 사용되었다. 매병은 중국 당나라 이후에 등장하여 고려는 물론 일본에서도 제작되었다. 매병이란 명칭은 매화 등 꽃가지를 꽂는 화병(花甁)이라는 뜻으로, 여러 문헌 자료들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18세기 이후 중국에서 사용된 용어로 알려져 있다. 고려 청자 매병과 함께 출토된 목간(木簡)에 쓰인 준(樽)이라는 명칭을 통해 고려시대에는 매병이 준으로 지칭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청자 매병은 형태가 다양하고 그 중에는 크고 유려한 작품이 많이 남아 있다. 또한 여러 가지 문양이 화려하게 묘사되어 고려 청자 문화의 높은 수준과 제작 기술의 완성도를 파악할 수 있다. 매병은 조선 초기 이후에는 단순한 형태의 병과 항아리의 쓰임이 커지면서 사라졌다.

연원 및 변천

매병은 중국 당나라 때부터 제작되었으며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 12세기 이후부터 청자백자로 만들어졌다. 매병은 조선 초기까지 사용되었다. 매병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제작된 그릇으로, 형태와 문양이 다양하다. 특히 고려 청자로 제작된 매병은 음각(陰刻) · 상감(象嵌) · 철화(鐵畵) · 철백화(鐵白畵) · 철채(鐵彩) 등의 기법으로 다양한 문양이 표현되었다. 매병의 문양은 연화문(蓮花紋) · 모란문(牧丹紋) · 국화문(菊花紋) · 운학문(雲鶴紋) · 매죽문(梅竹紋) · 포도당초문(葡萄唐草紋) · 포류수금문(蒲柳水禽紋) 등이 대표적이다.

구조 및 형태

매병의 입구[구연부(口緣部)]는 일반적으로 반구형(盤口形)이며 그 아래로 짧은 목을 지나 동체로 연결된다. 동체는 어깨가 벌어지는 형태이며 저부로 갈수록 좁아든다. 매병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 초기까지 수세기에 걸쳐 제작되었으므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릇의 형태가 약간씩 변화된다. 우선 12세기에서 13세기 전반까지 제작된 매병은 구연부에서 이어진 기측선(器側線)이 어깨를 지나며 완만하게 벌어지다가 동체의 상단부를 지나며 좁아들어 저부로 연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13세기 후반 이후에 제작된 매병은 구연부와 동체부를 연결하는 목이 짧아지고 어깨의 곡선이 크게 팽창한다. 그 아래로 이어진 기측선은 저부로 내려가면서 잘록해졌다가 다시 벌어지는 모습으로 변한다. 13세기 이후에 등장하는 매병의 기측선은 ‘S’자 형태를 나타내는 것이 특징이다. 매병의 형태는 14세기를 지나며 다시 반구형의 구연부가 나팔형으로 바뀌고 어깨의 기측선 또한 둥글게 변화한다. 이렇게 바뀐 매병의 형태는 조선 초기까지 지속된다.

제조 방법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매병은 대부분 도자기이다. 중국에서는 도자기로 제작된 매병과 함께 은이나 동으로 만들어진 매병도 일부 사용되었다. 대부분의 도자기 매병은 물레에 둥근 원판을 마련하고 그 둘레로 흙띠를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제작하였다. 중국의 경우 원나라 이후에는 구연부, 동체부의 상부, 저부 등을 틀 작업으로 따로 제작한 다음에 연결하는 방식으로 제작된 매병이 점차 증가하였다.

고려시대 청자 매병은 전라남도 강진과 전북특별자치도 부안 등 좋은 품질의 청자를 생산하던 가마터에서 주로 만들어졌으며 용인과 해남 등 지방에 자리한 청자 가마터에서도 소량의 매병이 제작되었다.

사용 방법 및 특징

매병은 일반적으로 술이나 물을 담는 그릇이다. 하지만 액체 상태의 귀한 음식물을 담는 용기로도 활용되었다. 실제 태안 마도 2호선에서 출수(出水)된 고려 청자 매병에 좋은 품질의 꿀이 담겼던 사실이 함께 발견된 목간에 적혀 있었다. 함께 출수된 도기 매병의 구연부에는 나무로 제작된 꼭지 형태의 마개가 꽂혀 있었다. 도기 매병 안에 담긴 액체가 흘러나오지 않도록 주둥이와 꼭 맞게 나무를 깎아 뚜껑을 제작한 것이다.

고려 청자 매병 역시 이러한 나무꼭지로 주둥이를 막고 그 위에 다시 청자로 제작된 뚜껑을 덮었을 가능성이 있다. 고려 청자 매병의 뚜껑은 윗면이 평평하고 아래로 이어진 기측선은 저부로 갈수록 벌어지는 형태이며 상면에 두 개의 둥근 구멍이 뚫려 있는 경우도 있다. 13세기에 제작된 유물들을 통해 보면, 우선 청자 매병의 주둥이를 나무 마개 등으로 막고 그 위를 천으로 감싼 다음 천이 풀리지 않도록 끈으로 동여매고 그 끈으로 구멍이 뚫린 청자 매병의 뚜껑까지 함께 결구하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고려시대 사람들은 항아리의 주둥이를 천으로 감싸 두고는 했던 것으로 보인다. 『선화봉사고려도경』에도 와준(瓦樽)의 주둥이를 황견(黃絹)으로 봉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렇게 잘 포장된 매병의 모습은 「청자 음각모란 상감보자기문 유개 매병」(보물, 1963년 지정)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이 매병은 동체에 음각 기법으로 모란꽃이 표현되었고 어깨에는 네 귀퉁이에 장식까지 달린 국화 문양 보자기가 곱게 덮인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참고문헌

『태안마도 2호선 수중 발굴 보고서』(문화재청, 2011)
「고려시대 매병의 용례와 조형적 특징」(김태은, 『미술사학 연구』 268, 2010)
「14세기 전반 고려 상감 청자 매병의 새로운 변화」(박정민, 『미술사학』 21, 2007)
「고려시대 청자 매병 연구」(이종민, 『강좌미술사』 2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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