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달겸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경양찰방, 성균관전적, 예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선보(善甫)
중심당(中心堂), 두암(蠹庵)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49년(영조 25)
사망 연도
1821년(순조 21)
본관
함평(咸平)
주요 관직
경양찰방|성균관전적|예조좌랑
정의
조선 후기에, 경양찰방, 성균관전적, 예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선보(善甫), 호는 중심당(中心堂) 또는 두암(蠹庵). 할아버지는 모성경(牟聖耕)이고, 아버지는 제주판관(濟州判官) 모경관(牟景觀)이며, 어머니는 현풍곽씨(玄風郭氏)로 곽중태(郭重泰)의 딸이다. 가학(家學)을 통하여 학문을 닦았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89년(정조 13)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경양찰방(景陽察訪)에 임명된 뒤 1792년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예조좌랑(禮曹佐郎)을 지냈고, 1793년 황해도사(黃海都事)·훈련주부(訓鍊主簿)를 거쳐 1803년 보시관(補試官)에 임명되었고, 1806년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온릉영(溫陵令)을 지냈다.

1811년 사헌부장령에 재임시에는 민간에 끼치는 폐해 및 과거시험 폐단 구제에 관한 상소문을 올렸다. 그 뒤 1812년 예조좌랑, 1813년 사헌부장령과 전주의 복시관(覆試官)을 역임하였으며, 1814년 통례원좌통례(通禮院左通禮)·대정현감(大靜縣監)을 지내면서 청백한 관리생활로 송덕비(頌德碑)가 세워졌다. 1817년 관직에서 물러나 자연과 경전(經傳) 속에 묻혀 지냈다.

저서로는『중심당유고(中心堂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영조실록(英祖實錄)』
『순조실록(純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중심당유고(中心堂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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