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개치부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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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개치부법
사개치부법
경제
개념
고려시대부터 주로 개성상인들이 사용했던 우리 나라 고유의 독특한 회계처리법. 개성부기.
이칭
이칭
개성부기
내용 요약

사개치부법은 고려시대부터 주로 개성상인들이 사용했던 우리나라 고유의 독특한 회계처리법으로 개성부기라고도 한다. 사개는 건축에서 쓰는 말로 네 모퉁이가 서로 물려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상태를 뜻한다. 사개치부법에서 사개는 거래 기록에서 꼭 필요한 요소인 주는 사람, 받는 사람, 주어지는 것, 받아지는 것 네 가지이다. 고려 시대에 왕실·귀족과 그들을 배경으로 한 부상들의 상업과 고리대금 활동을 기반으로 발생해 1920년대까지 사용되었다. 사개치부법은 현재의 거래를 현재 주고받는 사실로 기록해 쉽고, 장래의 채권과 채무도 표시할 수 있어 서양의 것보다 우수하다.

목차
정의
고려시대부터 주로 개성상인들이 사용했던 우리 나라 고유의 독특한 회계처리법. 개성부기.
내용

서양의 복식부기(複式簿記)와 근본 원리에서 일치하는 완전한 복식부기법이다. 일반적으로는 사개다리치부 · 사개다리문서 또는 사개문서(四介文書, 四計文書)라고도 하나, 주로 개성상인들이 사용 · 발전시켰으므로 사개송도치부법 · 송도사개치부법이라고 한다 또 개성상인의 것이라 해서 개성부기라고도 한다.

사개치부법의 특징은 사개(四介 · 四掛 · 四卦 · 四開)에 있다. 사개는 원래 건축에서 쓰는 말로 ‘네 모퉁이가 서로 물려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상태’를 나타내는데, 사개치부법은 네 가지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는 치부법을 말하는 것이다.

그 네 가지를 이전의 네 가지 주1, 네 가지 주2 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추정은 모두가 외면상에 나타난 네 가지를 추측한 데 지나지 않으며, 사실은 거래 기록의 내용이 되는 꼭 필요한 요소로 보아야 한다. 즉, 주는 사람, 받는 사람, 주어지는 것, 받아지는 것의 네 가지이다.

사개치부법의 장부에는 각각 오늘날 서양 부기의 분개장과 총 계정원장에 해당되는 일기와 장책(帳冊)이 있고, 기타 각종 보조부가 있다. 거래가 발생하면 먼저 일기에 기입하고, 그 다음에 장책에 거래처마다 따로 옮겨 쓴다. 일기는 초고를 초일기(草日記) 또는 명심록이라고 하고, 정식 일기를 정일기(定日記)라 하며, 장책을 주는 사람과의 거래장부인 타급장책과 받는 사람과의 거래장부인 외상장책으로 나누어지기도 한다.

일기의 기록은 문장으로써 서술적으로 하되,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주어로 하고, 주어지고 받아지는 것이 술어로 동사와 목적어를 쓴다. 주어지는 것을 급차(給次) 또는 입(入)이라고 쓰고, 받아지는 것을 봉차(捧次) 또는 거(去)라고 쓴다.

모든 거래를 사람과 사람과의 주고받는 것으로 기록하고, 그 사람의 이름이나 상호를 쓰나, 경우에 따라서는 그 일을 맡은 사람과의 거래로 간주하여 질(秩)을 사물 뒤에 붙여 기록한다.

예를 들면, 포목질(布木秩) · 이자질(利子秩) · 어음질(於音秩) 및 비용의 지급에 쓰는 공용질(公用秩) 등으로 쓴다. 이때 질은 사물을 맡고 있는 사람의 벼슬 또는 직책을 말한다.

현금의 경우에는 그것을 맡은 사람이나 보관하는 금고와의 거래로 생각하고, 그것을 나타내는 문(文) · 금(金) 따위의 문자를 쓰고, 받아들이는 것을 상(上), 내주는 것을 하(下)라고 쓴다. 그 밖에 등자법(鐙子法) · 타점법(打點法) · 열기법(列旗法) 등의 특수한 표시를 쓴다.

장책에는 거래처마다 별도로 계좌를 만들고, 주고받은 것의 구별은 내(內)라는 글자를 쓴다. 사개치부법이 서양의 복식부기와 근본 원리에서 일치하는 완전한 복식부기라는 데 대해서는 이론이 없다.

그러나 서양 부기에서는 현재의 거래를 장래의 채권과 채무로 표현한 데 비하여, 사개치부법에서는 현재의 거래를 현재 주고받는 사실로 기록함으로써 기록이 쉽고, 그것이 동시에 장래의 채권과 채무를 표시할 수 있으므로, 그 점에서 서양의 것보다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사개치부법은 개성상인들 사이에 비밀로 전수되고 일반에 공개되지 않아, 그 기원에 대하여 증거가 될 만한 장부나 자료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정확하게 고증할 수는 없다.

그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고려시대의 수도였던 개성에서 주로 개성상인에 의해 사용 · 발전되고, 개성 사람들의 구전(口傳)과 그것이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요인과 사회적 기반을 고려할 때, 고려 전성기에 생겨난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

고려시대에는 복식부기가 발생할 수 있는 요인으로서 상업의 발달, 특히 외국과의 국제무역 · 신용 · 동사조직(同事組織) · 위임 · 대리 · 화폐의 유통 등 여러 요인이 충분히 성숙되어 있었고, 서법(書法)과 산술 등의 수단도 충분히 갖추어져 있었던 사실을 들 수 있다.

특히, 고려시대의 외국 무역은 중국 대륙과는 물론, 동쪽으로 일본, 남쪽으로 유구(琉球) · 주3 등의 남해(南海) 여러 나라, 서쪽으로 주4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는 거의 전세계에 걸쳐 있었다. 그 중에서도 송나라와의 무역과 사라센제국 아라비아상인들과의 무역이 가장 활발하였다.

더욱이, 고려시대의 국제무역에서 쓰이던 은병(銀甁), 고리대금과 보(寶)의 성행, 서양의 활판인쇄보다 약 200년 앞선다는 금속활자와 인쇄술의 발명, 그리고 뛰어난 조선술(造船術)의 발달 등은 고려시대에 그것이 생겨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뒷받침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사개치부법, 즉 개성부기는 고려 전성시대에 왕실 · 귀족, 그리고 그들을 배경으로 한 부상들의 상업과 고리대금 활동을 기반으로 하여 발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 전성시대는 국제무역과 고리대금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1010년부터 1274년까지이고, 아라비아상인이 처음으로 우리 나라에 내항(來航)한 것은 1024년이며, 송나라와의 무역이 가장 성대했던 시기는 1012년부터 1277년까지로, 대략 11∼13세기 초반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사개치부법은 13, 14세기에 이탈리아에서 발생했다는 서양 복식부기보다 약 200년 앞선다고 할 수 있고, 세계 복식부기의 역사에서 그 효시는 서양의 이탈리아가 아니라 우리나라라고 할 수 있다.

사개치부법은 우리 나라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문화유산으로서, 1920년대까지 사용되어 존속한 것으로 보인다.

사개치부법으로 기록된 장부는 대한천일은행(大韓天一銀行)의 1899년부터 1906년까지의 장부가 한국상업은행 본점 도서실에 보관되어 있으나, 북한일본에는 그보다 오래된 장부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참고문헌

『사개송도치부법』(현병주, 덕흥서림, 1916)
『사개송도치부법연구』(윤근호, 단국대학교 출판부, 1970)
『한국회계사연구』(윤근호, 한국연연원, 1984)
『대한천일은행장부』(1899∼1906)
주석
주1

외상장책(外上帳冊) · 타급장책(他給帳冊) · 일기장(日記帳) · 명심록(銘心錄) 또는 회계책(會計冊).

주2

봉차(捧次) · 급차(給次) · 사익(私益) · 손해(損害) 또는 봉차(捧次) · 환자(還上) · 급차(給次) · 환급(還給).

주3

‘시암’의 음역어. 우리말샘

주4

고대 그리스ㆍ로마 시대에, 그리스ㆍ로마인이 아라비아 북부의 아라비아인을 부르던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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