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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과에 속하는 동물의 총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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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과에 속하는 동물의 총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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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과의 동물은 분포가 대단히 넓어서 구세계에 있어서는 북극으로부터 시작하여 남쪽으로는 아프리카 북서부까지, 신세계(新世界)에 있어서는 남북대륙 어디서나 살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져 있는 사슴과는 2아과(亞科)로 나뉘며, 사향사슴과는 1속(屬) 4아종(亞種)으로, 사슴아과는 14속 184종(種)·아종이나 된다.

몸의 크기는 대·중·소로 여러 가지가 있으며, 제일 큰 것은 말만큼이나 큰 종류(대륙사슴)도 있고, 제일 작은 것은 큰 개만한 고라니 따위도 있다. 뿔은 일반적으로 수컷만이 가지고 있기도 하고 암수 다 갖고 있지 않기도 하다. 뿔은 뺨뼈[額骨]로부터 생기며 골질중실(骨質中實)에서 분기성(分岐性)임과 동시에 탈락성(脫落性)이다.

뿔은 첫해에는 연골로 되어 있어서 이것을 대각(袋角)이라고 부른다. 화골(化骨)됨에 따라서 포피(包皮)는 나무껍질과 같이 벗겨져 골질각(骨質角)이 된다.

한 살이 되면 가지가 없는 뿔이 돋아나고 두 살이 되면 몇 개의 가지로 갈라진 뿔이 나타나서 나이를 먹을수록 계속 늘어난다. 12살 이상이 된 수컷의 뿔은 그 전해의 뿔과 모양이나 가지의 수에 변화가 없다.

유방은 사향노루를 제외하고는 다 2쌍을 가지고 있다. 담낭(膽囊)은 고라니를 제외하고는 없다. 사슴과의 동물들은 성질이 온순하며 겁이 많고 순초식성이다. 1회에 낳는 새끼들의 수는 한 마리인데 드물게 두 마리를 낳기도 한다.

우리 나라에 살고 있는 사슴과 동물은 다음과 같다.

① 사향노루:다리와 발굽이 작고 몸 뒷부분은 암갈색이며 뺨·눈·귀 사이에 흰무늬가 있다. 귓속은 순백색, 귀 밖은 흑백색이며 끝은 흑색이다. 눈에서 목까지 흰줄이 있으며, 수컷은 송곳니가 있다.

높고 험한 산악지대에서 살며 단독생활을 한다. 수컷은 세 살이 되면 복부의 사향선이 발달하여 특수한 냄새를 낸다. 11, 12월에 교미하며 임신기간은 5, 6개월이고 1, 2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바위 이끼, 연한 풀, 나무의 어린싹 등을 즐겨 먹는다.

② 고라니:고대형 노루의 일종이며 암수 모두 뿔이 없고, 송곳니는 길어서 나무뿌리를 캐먹는다. 털은 거칠고 굵으며 목과 허리의 털은 길고 등쪽은 담적갈색이다. 배는 백색이며 어깨·다리·꼬리는 담갈색이다.

젖꼭지는 4개이다. 우리 나라 전역의 산림과 야산에 서식하며 저지대에 분포한다. 1월에 교미하며 임신기간은 180일이고 1, 2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칡·풀잎·농작물 등을 주로 먹는다.

③ 대륙사슴:하모는 연한 분홍밤색이고 등면과 옆구리에는 붉은 황색의 반점이 있다. 동모는 한 가지 색채로 암갈색이다. 생태에 관한 것은 전혀 조사가 되어 있지 않다.

④ 백두산사슴:우리 나라에 서식하는 사슴 종류 가운데 제일 큰 종류이다. 뿔의 제1지는 일반적으로 길고 가장 짧은 제2지의 3배나 된다. 3년이 되면 첨각(尖角)이 생긴다. 각신은 규칙적으로 구부러져 있다.

하모는 몸의 등면과 바깥쪽이 창회색(蒼灰色)이다. 동모는 몸의 등면은 회갈색이나 엉덩이 반점은 등황색이다. 일반적으로 인가에서 떨어진 밀림 속에 살며, 특히 산지성 토지를 좋아한다.

사회생활을 좋아하고 겨울에는 때때로 무리를 이룬다. 봄이 되어 따뜻한 시기가 가까워지면 해체하여 수컷들은 다음 겨울이 될 때까지 고독한 생활을 하나, 어미와 어린 새끼들은 그대로 군집을 유지하며 생활한다. 교미시기는 9월 초순에서 10월 초순 사이이며, 5, 6월경에 한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사슴의 뿔은 녹용(鹿茸)이라 하여 귀한 한약재로 취급되고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이의 효능을 “성이 온(溫)하고 미(味)가 감산(甘酸)하고 무독하니 허하고 피로한 데, 사지와 등이 저리고 아픈 데, 남자의 신(腎:한방에서 말하는 신은 콩팥과 동시에 성욕·생식기능을 가리킨다)의 허랭, 무릎의 무력, 설정(泄精), 여인의 붕루혈(崩漏血)·적백대하증(赤白帶下症) 등을 다스리고 태를 편히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녹용은 새로 돋아난 사슴의 뿔을 가리키는 것으로 혈관이 많고 외면은 부드러운 잔털로 덮여 있다. 보통 석회질과 콜라겐으로 이루어진 골질(骨質)이다.

이와 같이 유연하던 뿔은 5, 6월을 지나면서 점차 굳어지고, 혈관도 줄어들고, 부드러운 잔털도 없어져서 마침내 단단한 각질이 된다. 이 각질의 뿔은 다음해 봄에 떨어지고 새로운 뿔이 돋게 된다.

따라서 일제시대에는 봄철이 되면 백두산 일대를 비롯하여 멀리 홍안령에 이르기까지 녹용을 찾는 사냥꾼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녹용을 채취한 다음 부패를 방지하는 처리를 하여 중간 상인들에게 넘겼다.

부패를 방지하는 처치는 다음과 같았다. 먼저 사슴을 잡으면 뿔에 두골(頭骨)의 일부를 붙여서 베어낸다. 이것을 즉시 열탕에 담그는데, 대략 0.5초 정도 담근다. 만약 열탕에 담그는 시간이 지나치면 녹혈이 익어서 값없는 물건이 되고 또 시간이 부족하면 부패하여 버린다.

열탕에서 끄집어낸 녹용은 나뭇가지에 달아매고 4척(尺)쯤 밑에서 미약한 화기(火氣)로 말린다. 화력이 너무 강하면 역시 녹혈이 익어서 좋지 않다.

녹용의 품질은 상·중·하의 세 가지로 나뉜다. 뿔에서 머리에 가까운 것이 하품이고, 제일 끝 부분이 상품, 중간 부분이 중품이다. 산지에 따라서도 품질에 차등을 두었다.

가장 상품으로 친 것은 강원도산 매화록(梅花鹿)의 뿔이었고, 중품은 남해 여러 섬과 경상남도에서 서식하던 매화록이었다. 가장 하품으로 치던 것은 적록의 뿔이었다. 녹용을 베어낼 때 나오는 생혈도 보약으로 이용되었다.

≪동의보감≫에서는 “녹혈은 허를 보하고 요통·폐병·토혈·붕루대하(崩漏帶下)를 다스린다. 어떤 사람이 사냥을 하다가 길을 잃어서 기갈한 나머지 사슴을 잡아서 피를 마시니 문득 기혈이 장성(壯盛)하고 강건해졌는데 어떤 사람이 이것을 본받아서 사슴의 녹각 사이의 피를 내어서 마시니 효과가 많았다.”고 되어 있다.

사슴의 고기는 지방이 적고 노린내가 없어서 꿩고기와 더불어 조선시대에는 매우 애용되었다. ≪산림경제≫·≪증보산림경제≫·≪고사십이집 攷事十二集≫·≪규합총서 閨閤叢書≫ 등에서는 “사슴고기를 냉수에 넣고 삶아 7, 8분쯤 익혀서 먹는다. 지나치게 익으면 건조해서 맛이 없고, 사슴의 혓바닥이나 꼬리도 같은 방법으로 삶는다. 또 이것을 구우려면 끓는 물에 반만 익혀 다시 굽는다.”고 하였다.

사슴고기로 국을 끓이려면 사슴고기를 깨끗이 씻어 말려 술·식초로 데치고 여기에 소량의 천초·회향·계핏가루 등을 넣고 술·초·장에 버무려 파 몇 뿌리를 섞어 자기에 밀봉하여 중탕한다고 하였고, 포를 만들려면 껍질을 벗기고 작게 썰어 소금·천초·실파·술에 버무려 겨울이면 3일, 여름이면 하루를 두었다가 꺼내 실로 묶어 볕에 말린다고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진도와 완도에 궁중에서 사용하기 위한 수록(水鹿)이 방목되고 있었다. 이곳은 일체의 사냥이 금지되어 있었고, 오직 해마다 한 번씩 늦봄에 특정 사냥꾼이 가서 녹용을 채취하여 궁중에 공납하였다. 이것은 조선 말엽에 아주 없어져 버렸다.

현황

현대에 들어와서는 1910년경 강원도 난곡에서 300마리 정도의 사슴이 사육된 적이 있었고, 1940년에 만주에서 적록 120마리를 가져와서 개성에서 사육하였다.

광복 후에는 사슴의 사육이 거의 없어졌다가 1958년 대만으로부터 꽃사슴 25마리가 수입되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또 1969년에는 300여 마리의 순록이 제주도에 도입된 적이 있다.

1975년에는 3,677마리, 1980년 말에는 9,000마리에 달하였다. 그래도 녹용은 크게 부족하여 1980년에 합법적으로 수입한 것만도 가격으로 따져 82억 4000만 원에 이르렀다.

양록장(養鹿場)은 대개 1마리당 20평 정도의 면적을 필요로 하며, 높이 3m의 철책을 치고 평소에는 한 우리에 몰아 넣는다(발정기에는 암컷 10마리에 수컷 1마리씩 넣는다). 사료로는 고산지대의 약초가 좋으나 사육의 경우는 갈잎·칡잎·싸리순·밀기울·콩 등을 쓴다.

참고문헌

『한국동식물도감』 제7권-동물편-(원병휘, 문교부, 1967)
『한국식품사회사』(이성우, 교문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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