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평순위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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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사
제도
고려 충렬왕 때 방도금란(防盜禁亂)을 담당하던 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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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충렬왕 때 방도금란(防盜禁亂)을 담당하던 관서.
내용

원나라의 직제를 본떠서 설치한 순군만호부가 1369년(공민왕 18) 6월에 사평순위부로 고쳐졌다. 관직으로 제조(提調) 1인, 판사 3인, 참상관(參詳官) 4인, 순위관(巡衛官) 6인, 평사관(評事官) 5인을 설치하였다.

이는 만호·천호 등 순군만호부의 체제를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직제로 개편되었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고려는 이 해 5월 북원의 연호(年號)인 지정(至正)을 혁파하고, 동년 6월에 또 관제를 개혁함으로써 다시 1356년(공민왕 5)의 체제로 돌아갔다.

그러나 사평순위부는 우왕 초 이인임(李仁任) 등의 친원세력이 강화됨에 따라 또 순군만호부로 개편하게 되었으며 1402년(태종 2) 6월순위부(巡衛府), 이듬해 6월의용순금사(義勇巡禁司) 등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1414년(태종 14)의금부(義禁府)로 되었다. →의금부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집필자
김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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