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는 자신의 논리적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은 빈농 돌쇠에게 지식인 정광조가 구조적 문제를 깨닫게 하는 것을 주요 서사의 축으로 삼고 있다. 이 구조적 문제를 암시하는 것이 바로 소설의 표제이기도 한 '쥐불(서화)'이다. 돌쇠는 더 이상 마을에서 예전 같이 쥐불놀이를 하지 않음에 아쉬움을 느끼는데, 이는 쥐불이 근대화 · 자본주의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찾지 않게 되는 옛 풍속이라는 점과 연결된다. 근대화의 진행은 마름만을 살찌우고 대부분의 농민을 빈농이나 농업 노동자로 몰락하게 만든다. 돌쇠가 가난한 원인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사정이 쥐불놀이의 쇠락과 맞물려 있는 것이다.
영세한 소작농이 대부분인 반개울 마을에 사는 돌쇠는 어느 날 바보 응삼이를 꾀어내어 노름판을 벌이고 크게 한몫을 챙긴다. 응삼이는 소 판 돈 수백 냥을 모두 잃고 만다. 그렇게 번 돈으로 돌쇠는 아내 순임이와 모친에게 용돈을 주는가 하면 집안 살림에 필요한 각종 양식들을 마련한다. 돌쇠의 부친 김첨지는 노름을 통해 이웃의 돈을 벌어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성을 내지만, 소작인으로서 가난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이내 입을 다문다.
한편 응삼이의 처 이쁜이는 스물을 겨우 넘은 해사한 여자로 어린 나이에 바보 응삼이에게 민며느리로 팔려왔다. 바보 남편을 미워하던 이쁜이는 점차 사내답게 생긴 풍채와 언변 좋은 돌쇠에게 정을 쏟게 되고, 내통하기에 이른다. 면 서기 김원준도 이쁜이에게 남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는데, 그는 돌쇠와 이쁜이의 관계를 몰래 지켜본다. 어느 날 김원준은 몰래 응삼이의 집에 들어와 이쁜이를 추행하는데 이쁜이는 이에 지지않고 그를 내쫓는다. 이에 분노한 김원준은 가운뎃 마을 사는 구장 집을 찾아가 노름이 근절되어야 한다며 집회를 열자고 한다.
그 이틀 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김원준은 도박과 간통이라는 풍기 문란을 근절해야 한다며 벌칙을 정하자고 제안한다. 이때 동경 유학생 조광조가 나서 특히 가정의 풍기 문란은 모두 조혼과 강제 결혼 때문이라는 주장을 펼칠다. 그의 말에 힘을 얻은 돌쇠는, 노름을 한 것은 잘못이지만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노름을 했다는 점과 김원준이 이쁜이를 추행한 사실을 밝힌다. 이 회합이 김원준의 계략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자리는 끝이 난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돌쇠는 정광조의 논리적 언변과 판단에 감탄한다. 그리고 이쁜이에게 "세상은 우리가 모르는 별세상이 또 있는가부지?"라고 말을 건넨다.
「서화」는 1933년 당시, 궁핍한 농촌의 현실을 다루면서도 착취당하거나 투쟁하는 그간의 농민과는 다른 농민을 그려낸 것으로 문단의 화제가 되었다. 그간의 프롤레타리아문학과 구별된다며 「서화」를 극찬한 임화와 소작 쟁의가 나오지 않은 작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라는 김남천의 논쟁이 대표적이다.
이기영은 「서화」에서 민중들이 살아가는 구체적 삶의 현장을 핍진하게 그려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화」는 정광조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농민과 지식인의 계몽적 위계를 뚜렷이 하고 그 영향 관계가 일방향적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노정한다. 이러한 한계는 그 속편인 「돌쇠」에서 정광조의 역할이 더욱 커지면서 계속된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