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7월 10일부터 1934년 1월 10일까지 『중앙일보』에 연재되었다. 1926년에 발표한 중편 「탈춤」과 내용이 비슷하지만, 기법면에서 훨씬 세련되었고 분량도 5배나 길다. 이 작품에서는 애정의 갈등이 전체 구성에서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병식과 계숙은 의남매 간이고 수영과는 친구간이다. 병식은 계숙을 수영에게 소개하지만, 실은 자기도 계숙을 사랑하고 있고, 못 이룰 사랑에 고민한다. 그러다가 병식은 이러한 비련과 생활고 때문에 자결하고 만다.
이러한 미묘한 삼각관계에 조경호가 뛰어든다. 조경호는 지주의 아들로, 미국 유학을 한 대학교수이고 기혼자이다. 수영은 경호네 마름의 아들이다. 경호는 자기의 사촌동생이자 계숙의 친구인 경자를 이용하여 계숙을 차지할 음모를 꾸미지만, 계숙의 항거로 실패하고 봉변만 당한다. 계숙은 수영을 따라 시골로 내려가 결혼하고 농촌에 정착할 결심을 한다.
작품의 내용은 이와 같지만 주제는 애정의 문제가 아니다. 작가는 피압박민의 저항의식과 귀농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병식·수영·계숙은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최하층의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병식은 신문사 문선공, 수영은 신문배달부, 계숙은 백화점 점원이다.
이들은 학력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데서 작가의 냉소적이고 야유적인 저항의식을 엿볼 수 있다. 일제 치하의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야유이고 반항인 것이다. 이러한 저항의식은 조경호라는 인물에 의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조경호는 지주의 아들이요, 미국 유학을 하고 온 대학교수요, 한 가정의 가장이다. 그런데도 파렴치한 방법으로 계숙을 노린다. 백화점 점원을 하는 계숙에게 동경 유학이라는 미끼를 던지고 가까이 유혹해서 겁탈까지 하려고 한다. 연적인 수영이 자기 집 마름의 아들이라고 해서 모욕적인 핍박까지 가한다. 나중에는 수영에게 준 소작논까지 빼앗아 간다.
여기에서 작가는 지주계급의 추악상을 폭로하고 비인간적인 횡포를 비판하고 있다. 계숙과 수영은 여기에 굴하지 않고 항거하는 기백을 보인다. 결국, 수영과 계숙이 지향한 곳은 농촌으로, 젊음을 바쳐 일할 곳은 농촌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들의 지도자적인 사명의식 때문이다. 도회적인 사치와 허영에 대한 동경을 버리고 농촌에 내려온 이들은 호미를 들고 희망의 노래를 합창하며 미소 짓는다. 귀농 의지의 승리가 이 작품의 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