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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

한문학개념용어

 이치에 따라서 사물을 해석하고 자신의 의견을 서술하는 한문문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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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한문학
유형
개념용어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이치에 따라서 사물을 해석하고 자신의 의견을 서술하는 한문문체.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설체는 ‘설’의 자의(글자의 뜻)가 말하듯이 해석과 서술을 주로 하는 문체이다. 다시 말하여 설체는 의리(뜻과 이치)를 해설하는 자기의 의사를 가지고, 종횡억양(縱橫抑揚)주 01)을 가하여 좀더 상세하게 서술하는 것이다. 논체와 크게 다른 점은 없다.
설이라는 명칭은 본디 『주역』 설괘(說卦)에서 시작되었다. 한나라 때의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도 그 명칭이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문체로는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위진남북조시대를 거치는 동안 설의 이름을 가진 것은 조식(曺植)의 문집 가운데의 2편뿐이다. 이로 인하여 『문선(文選)』에서는 설체가 등장하지도 않는다. 당나라 때에 이르러 고문운동에 편승하여 설체가 새롭게 창안되었다.
한유(韓愈)의 「잡설(雜說)」·「사설(師說)」을 비롯하여 유종원(柳宗元)의 「골설(鶻說)」·「포사자설(捕蛇者說)」·「승부설(乘桴說)」·「적룡설(謫龍說)」·「웅설(熊說)」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에도 「사설」과 같이 직유적인 것이 있으나 대체로 은유적인 것이 많다.
「잡설」 4에서는 지우의 어려움을 천리마와 백락(伯樂)의 관계로 다루었고, 「포사자설」에서는 폭정의 혹독함을 뱀이나 범보다도 무서운 것으로 비유하였다. 그리하여 설체는 우의적인 작품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송나라 때의 소순(蘇洵)에 이르러 이와는 약간의 성격을 달리하는 설체가 등장하였다.
이는 「명설(名說)」·「자설(字說)」로서 「중형자문보설(仲兄字文甫說)」·「명이자설(名二字說)」 등이 그것이다. 이 문체는 그러한 이름이나 짓게 된 소이(所以)주 02)를 해설하여 고명사의(顧名思義)주 03)를 은근히 강조하는 의미가 있었다. 대부분 문장이 간결한 것이 특색이다.
우리나라에 「명설(名說)」·「자설(字說)」 두 가지 체가 어느 경로를 통해서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다. 처음으로 우리 문헌에 보인 것은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의 문집에서이다. 여기에 「경설(鏡說)」·「주뢰설(舟賂說)」·「슬견설(虱犬說)」·「뇌설(雷說)」 등 다수의 설체가 수록되었다. 모두 우의적인 작품이다.
「경설」은 깨끗한 거울(똑똑함을 드러낸 사람)과 더러운 거울(똑똑함을 감추고 있는 사람)의 두 가지 중에 더러운 거울의 경우가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서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날 때까지는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결국 이 설체는 한유나 유종원을 배운 것이라 하겠다.
조선시대에 들어서서는 설작품이 많이 지어졌다. 강희맹(姜希孟)의 「훈자오설(訓子五說)」, 권호문(權好文)의 「휵묘설(畜猫說)」, 이식(李植)의 「교송설(矯松說)」, 김매순(金邁淳)의 「작치설(鵲鴟說)」, 이건창(李建昌)의 「응설(鷹說)」 등이 명작으로 손꼽힌다.
다른 한편으로는 소순을 배운 명설·자설·호설도 계속 유행되었다. 분량으로 따지면 자설이 제일 많고 다음이 호설이다. 명설은 희귀한 편이다. 자설은 고려조 이곡(李穀)의 「경보설(敬父說)」·「심보설(深父說)」에서 비롯되었고, 호설은 백문보(白文寶)의 「율정설(栗亭說)」·「척약재설(惕若齋說)」에서 비롯되었다.
명설은 조선초 하륜(河崙)의 「명자설(名子說)」에서 시작되었는데 설리적인 설체에 비하여 간결한 단편이라는 것이 특색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자유스럽고 분망하게 글을 짓는 것을 이름.
주02
이유
주03
이름을 보며 그 뜻을 되새김.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윤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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