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2년(숙종 18)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안우(安遇)·노필(盧㻶)·안극가(安克家)·노극성(盧克誠)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1869년(고종 6)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1952년에 복원되었다가 그 뒤 소실되었다. 당시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묘우(廟宇)·강당, 신문(神門), 3칸의 고사(庫舍) 등이 있었다. 묘우에는 안우를 주벽(主壁)으로 하여 좌우에 노필·안극가·노극성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었다.
강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 강론의 장소로 사용되어 왔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3월 중정(中丁 : 두번째 丁日)과 9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었으며, 제품(祭品)은 3변(籩) 3두(豆)이다. 재산으로는 전답 1,400평, 임야 1정보, 대지 500평 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