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여자교육회(女子敎育會)

근대사단체

 1906년 서울에서 조직된 여성 단체.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여자교육회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1906년 서울에서 조직된 여성 단체.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설립목적
여성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된 첫 여성 단체이다. 여자교육회는 본래 양규의숙(養閨義塾)을 설립, 재정적으로 후원하며 그 운영을 담당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설립 취지문에 의하면, 문명 점취(文明漸就)하는 시대적 요청에 의해 여자 교육을 실시, 구제도를 벗어나 자유롭고도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가지게 하는 데 있다고 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활동내용
발기는 1906년 6월에 진학신(秦學新)·진학주(秦學胄)·김운곡(金雲谷) 등 남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여성 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초등교육 과정의 양규의숙은 1906년 6월 10일에 설립하고, 초대 숙장에 농상공부대신 권중현(權重顯)을 추대하였다. 개교식 때는 권학 조칙(勸學詔勅)을 받들어 낭독하는 등 준관립적인 여학교풍을 이루려고 하였다.
여자교육회 회원들은 200여 명의 귀족 부인들로 이루어졌는데, 그 때문에 개교식이 형편에 맞지 않게 성대히 치러졌다. 이렇듯 발기인들의 무계획한 과다 비용 지출 등으로 무리하게 의연금을 거두어 운영면에서 사회적인 의혹을 불러일으켰으며, 그 결과 양규의숙은 1906년 11월에 문을 닫게 되었다.
이후 여자교육회는 범사회 계몽적인 여성운동을 추진하였다. 특히 양반 사회와 한문 교육의 폐단, 자유롭지 못한 여자들의 출입 문제와 의복개량 문제 등을 강연회나 토론회를 통해 인식, 개혁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또 여자교육회 부서 중에 교육과·여공과·위생과를 두었다. 이는, 첫째 국가의 기둥이 될 자녀를 교육하는 여자 교육을 중시하고, 둘째 여자기술교육을 발전시켜 국가 경제 진흥을 도모하고, 셋째 육아·조병(調病) 등 가정의 위생을 한 단계 끌어올려 인구를 늘려 국력을 키우는 데 전력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여자의 사회 복지적 차원에서 생명보험과를 설립, 공립병원 설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위해 용달회사를 설립하여 임원용 제복 제작도 맡아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운동 과정에서 3,000원의 부채를 지게 되어, 윤치오(尹致旿) 등 사회 유지 11명이 1908년 5월 여자교육회 정상화를 위한 발기회를 조직하게 된다. 이들은 새로 여학교인 여자보학원(女子普學院)을 설립하고 이를 후원할 여자보학원유지회를 조직, 여자교육회의 실추된 사회적 신망을 다시 회복시켰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박용옥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