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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민주의(一民主義)

    정치개념용어

     1949년 이승만이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명분으로 제시한 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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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9년 이승만이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명분으로 제시한 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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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과 함께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반공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목적에서 새로운 이념으로 ‘일민주의(一民主義)’를 제기하였다. 일민주의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1948년 10월 9일 발기한 대한국민당에서였다. 배은희를 중심으로 하는 목요회와 1948년 8월 독촉국민회를 토대로 이승만을 영도자로 하는 여당을 조직하기 위한 준비 끝에 발족하면서 대한민국당은 “하나 아닌 둘 이상의 상대적 존재가 있을 수 없다는 일민주의”를 당시(黨是)로 내세웠다. 그 이후 각종 잡지에 일민주의를 제창하는 글이 실렸으나 아직 이념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1949년 4월 7일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청년단에게 “내가 기왕에 발포(發布)한 바 일민주의의 4대 정강은 우리 민족의 민주주의의 토대가 될 것임으로 국민 전체가 이것을 절실히 흡수해야만 될 것이니, 정당 조직 여부는 막론하고 이 주의만으로 철저히 믿는 남녀들로 굳게 결속하야 이를 일반 동포에게 널리 선전 공작하야 이 주의를 모르는 사람이 없도록 목표를 삼고, 국민회와 대한청년단이 이를 전적으로 담당하야 그 임무를 수행하므로써 이 주의가 우리 국민의 기초 위에 주축돌이 되도록 노력하기를 부탁하는 바이다.…”라고 하여 일민주의를 국민 전체의 이념으로 제시하였다.
    뒤이어 공보처 발간의 『주보』를 통해 일민주의에 대한 내용 「일민주의란 무엇? 헤치면 죽고, 뭉치면 산다」를 소개하고 4월 20일 서울 중앙방송국을 통해 ‘일민주의정신과 민족운동’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하였다. 이후 일민주의는 ‘국시(國是)’화 되는 이념으로서, 이를 보급하기 위한 단체가 만들어졌다. 1949년 8월 25일 일민주의보급회는 단체등록을 하고 9월 초 임원을 결정하였다. 이승만은 일민주의 이념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주장하였다.
    첫째,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체계적인 이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즉, 공산주의 때문에 세계의 모든 국가가 생존의 위기를 겪고 있어, 공산주의의 속국이 되든지, 싸워서 이겨 자유복리를 누리게 되든지 하는 선택에 직면해서 투쟁하고 있듯이, 우리도 스스로를 위하여 공산주의와 싸워야만 한다. 이때 그들과의 싸움은 직접적 대결인 군사적 싸움이 되기까지는 사상적 싸움이지만, 사상이 평범한 민주주의가 이론상 엄밀한 조리를 갖춘 공산주의 선전에 대항하지 못하므로, 민주주의보다 더 체계적인 새로운 이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둘째, 단일민족이라는 우리 민족의 특성에 맞는 이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즉, 우리 민족은 같은 혈통과 운명을 지닌 단일민족으로 언제나 하나였지 둘이 아니었으나 귀천·빈부·지역적 관념·남녀구별 등으로 분열되었고, 이로 인하여 국운이 기울었으므로, 이것을 극복하여 하나로 통합하는 새로운 이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이유로 혈통과 운명이 같은 한 겨레, 한 백성의 핏줄과 운명을 끝까지 유지, 보호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일민의 나라, 일민의 세계를 만들어 세계의 백성들이 자유와 평화, 행복과 명예를 누리도록 한다는 것이 그의 기본 이념이다.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 ‘나누어지는 데서 죽고 일(一)에서 산다’는 구호는 하나로의 통합을 강조하는 일민주의의 상징적인 표어이다.
    한편, 일민주의는 하나로서의 통일을 지향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극복과 공산주의의 배척 등 양자를 지양한다. 공산주의가 계급갈등을 조장하여 통일을 부정한다는 이유에서 일민주의는 그것과 대립되며,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가 비록 공산주의의 유물론을 배척하지만 돈을 유일한 것으로 보는 ‘돈주의’·‘돈숭배주의’이기 때문에 이것도 완전성을 잃고 있어 이 두 사상은 모두 중용을 잃은, 참된 사상체계가 아니므로, 이 양자를 지양하는 일민주의가 진정한 이념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이승만은 일민주의 이념 아래 정당을 마련하여 공산주의의 배격과 민주주의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하여 네 가지 정강을 제시하였다. 일민을 분열시키는 요인의 척결이라고 요약될 수 있는 이 강령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경제적으로 빈곤한 인민의 생활정도를 높여 부유하게 하여 누구나 같은 복리를 누리게 할 것, 둘째 정치적으로 대다수 민중의 지위를 높여 누구나 상등계급의 대우를 받게 되도록 할 것, 셋째 지역의 도별을 타파하여 동서남북은 물론 대한국민은 모두 한 민족임을 표명할 것, 넷째 남녀동등주의를 실천해서 우리의 화복안위의 책임을 삼천만이 똑같이 분담하게 할 것 등이다.
    이 강령을 바탕으로 이범석(李範奭)을 명예회장으로 하는 일민주의보급회가 결성되어 국민운동으로 전개되었으며, 같은 맥락에서 이 이념을 바탕으로 한 정당의 필요성이 역설되기도 하였으나, 뒤에 집권정당으로 출범한 자유당에서는 일민주의가 언급되지는 않았다. 특히 일민주의보급회는 조선민족청년단(이하 족청) 계열이 장악하고 활동하였다. 족청계인 양우정과 안호상 등이 일민주의보급회에 참여하고, 이를 보급시키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1950년 4월 이범석의 국무총리 사임과 5월 안호상의 문교부장관 사임과 함께 족청계의 일민주의보급회를 통한 세력확대는 어려워지게 되었다.
    그러나 일민주의의 기본 이념은 안호상(安浩相) 등에 의해서 더욱 이론화되었다. 첫째로, 남녀·상하 차별 없애기이다. 과거의 전제주의, 현재의 독재주의 및 자본주의국가에서 이 차별이 심하여 폐해가 크므로 이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남녀·상하 차별을 없애는 것은 자연적인 성적 차이와 상하 구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인격과 도덕적·정치적 차별을 없애는 것을 의미한다. 일민주의는 이 차별을 없애고 일민의 남녀·상하 모두가 정치적으로 권리와 의무를 균일하게 누리는 균일정치, 즉 민주주의를 지향하며 그 근본 목표를 자유에 둔다는 것이다.
    둘째로, 지방·파당 차별 없애기이다. 이는 과거 조선시대·한말·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에 파당으로 말미암아 폐단이 컸으므로, 지방색과 파당을 버리고 일치단결하여 공산당에 대항하자는 주장이다. 이와 같은 파당성의 제거는 과거와 같은 파당적·차별적 교육이 아니라 일민주의를 실천하는 민족교육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며, 이때 교육상 목표는 진리에 둔다.
    셋째로, 빈부·귀천 차별 없애기이다. 경제적 또는 물질적 차이로 말미암아 부자와 가난한 자를 구분하여 대우하는 것은 잘못이므로, 양자를 똑같이 도덕적으로 대우해주고, 이를 법률로 보장하여 차별대우를 없앤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일함으로써 민생경제를 이룩하여 자본주의처럼 소수의 부자만 잘 살고 다수는 가난한 경제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처럼 폭력으로 빈부차이를 없애고자 하는 공산주의경제도 함께 배척하는 것으로, 그 근본목표를 공정에다 둔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일민주의는 같은 혈통과 운명이라는 민족의 공통적 기반 위에서 이론적 틀을 갖는데, 이 이념에서 제시된 사회상은 단일민족으로 통일된 자유민주주의 사회상이다. 또한, 그러한 사회는 한 겨레로의 통합을 저해하는 장애가 없는 이상적 사회이기도 하다. 특히 안호상은 일민주의보급회 부회장에 취임하며 일민주의를 신라의 화랑주의와 연계시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비판하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와 같은 이상사회로의 발전은 대내적인 분열요인들과 대외적인 공산주의에 의해서 저해되고 있고, 이 장애요소의 제거가 당위적으로 요청되므로, 일민주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게 된다. 이것 때문에 일민주의는 당시에 반공이데올로기로 작용할 수 있었으나 대내적으로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하지 못하였다.
    즉, 기존 제도와 권력을 방어하는 상황에서 제기되면서 기존 제도의 정당화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일민주의는 건국 직후의 한국정치사회를 이끌어 갈 지도이념이 되지 못한 채 포괄적 이념에 그치고 말았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이재석
    개정 (2013년)
    노영기(서울대학교 규장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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