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7년(선조 40)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성일(金誠一)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18년(광해군 10)에 ’臨川‘이라 사액되어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왔다.
그러나 1620년(광해군 12) 유림의 공론에 따라 이황(李滉)을 모시는 여강서원(廬江書院)으로 김성일의 위패를 옮기게 되었다. 그 후 오랫동안 복구하지 못하다가 1847년(헌종 13)에 중건하고 다시 위패를 모셨다.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08년에 복원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숭정사(崇正祠), 15칸의 홍교당(弘敎堂), 각 3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신문(神門), 4칸의 전사청(典祀廳) 등이 있다. 사우(祠宇)인 숭정사에는 김성일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당인 홍교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강론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동재와 서재는 유생들이 기거하면서 공부하는 곳이며, 주소는 서원을 관리하는 고자(庫子)가 사용하고 있다.
이 서원의 강당은 1985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으나, 2010년 해제되었다. 매년 3월 초정(初丁: 첫번째 丁日)과 9월 초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은 4변(籩) 4두(豆)이다. 재산으로는 전답 2,000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