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9년(공민왕 18)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조선이 건국 이후 계속 출사하여 1402년(태종 2) 성균관대사성에 임명되었다. 역학(易學)에 조예가 깊었던 까닭에 당시 『주역』을 배우고 있던 태종의 명을 받들어 날마다 입궐하여 자문에 응하였다. 관직은 한성부우윤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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