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호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전기 위사원종공신 1등 등에 책록된 공신. 무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주요 관직
청홍도방어사|선전관
목차
정의
조선전기 위사원종공신 1등 등에 책록된 공신.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중종 대 무인으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아 오랫동안 선전관을 지냈고 특히 활을 잘 쏘았다. 명종이 즉위할 때 공이 있어 위사원종공신(衛社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었으며, 훈련원도정으로 있으면서 여러 차례 장수의 재목감으로 추천되었다.

1547년(명종 2) 무관으로서는 드물게 하절사(賀節使)에 발탁되어 중국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마침 강계에 귀양 가있던 이언적(李彦迪)을 만났는데 그가 추위에 떨고 있는 것을 보고 여우털 갑옷을 벗어주기도 하였다.

당시 이언적이 역적으로 몰렸기에 친척·친구라도 화가 자신에게 미칠까 전전긍긍하는 세태였는데 평소에 안면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일을 하자 이언적도 사양하지 않고 받아들여 그의 아름다운 뜻을 이루게 해주었다.

그 뒤 함경도 육진(六鎭)지역의 성들이 허물어져 여진족이 들어와 노략질을 하여 폐단이 심하자 이에 대한 대책을 여러 차례 건의하였다. 1551년 경상우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되었으나 인근 지역을 노략질한 왜구를 잡아내지 못한 것으로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체직되기도 하였다.

1555년 왜선 70여척이 전라도 영암달량포(達梁浦)에 쳐들어와서 부근의 민가를 불사르고 노략질한 을묘왜변이 일어나자 청홍도방어사(淸洪道防禦使)에 발탁되어 난국의 수습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참고문헌

『중종실록(中宗實錄)』
『명종실록(明宗實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대동야승(大東野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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