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남도 북청군 신북청면 양천리에서 태어나 양천국민학교를 거쳐(1928), 대성중학교 2년을 중퇴하고 농업에 종사하였는데, 15세부터 퉁소를 배웠으며 23세에는 고향 양천리 사자놀음에서 퉁소를 불었다.
1950년 6·25사변 때 월남하였으며, 1962년부터 서울북청사자놀음 회원이 되어 다시 퉁소를 불기 시작하였다. 솜씨가 뛰어나 1972년 8월「북청사자놀음」 악사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고, 신의식(申宜湜)·이철균(李哲均)을 후계자로 두었다.
이 미디어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비스에만 활용하도록 허가받은 자료로서, 미디어 자유이용(다운로드)은 불가합니다.
항목 내용 중 오류나 보충하여야 할 사항을 상세하게 남겨주시면 검토하여 반영하겠습니다. 처리 결과는 의견·문의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미디어 또는 미디어 설명에 수정하여야 할 사항을 상세하게 남겨주시면 검토하여 반영하겠습니다. 처리 결과는 의견·문의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대한 문의나 의견을 남겨주시면 검토하여 반영하겠습니다. 처리 결과는 의견·문의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용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남겨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용 시 아래와 같이 출처를 표시해 주세요.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