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풍 ()

의생활
물품
삼국시대에, 착용한 고깔 모양의 모자.
내용 요약

절풍(折風)은 삼국시대에 착용한 고깔 즉 삼각형 모양의 모자다. 절풍이란 명칭은 고구려 문헌에서 발견되었지만 고구려 벽화에 표현된 절풍과 동일한 모양의 유물이 신라나 백제 그리고 가야에서 모두 출토되어 절풍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착용하였던 모자임을 알 수 있다. 고구려에서는 일반인까지 광범위하게 착용하게 하면서 새깃 장식의 유무, 금은 장식 및 고급 직물 등의 차별화를 통해 신분을 드러냈다. 신라와 백제는 화려한 금속제 절풍형 모자에서 상위 신분이 착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문헌 기록의 부재로 착용 양상은 명확하지 않다.

정의
삼국시대에, 착용한 고깔 모양의 모자.
형태

절풍(折風)은 고구려 고유의 모자 명칭으로 『삼국지(三國志)』, 『후한서(後漢書)』, 『남사(南史)』, 『북사(北史)』 등에 “절풍의 형태는 변(弁)과 같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그 모양이 변(弁) 즉 고깔과 같은 삼각형 모양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주2에 나타난 절풍은 끝이 뾰족한 삼각형이라기보다는 윗부분이 둥글고 넓적한 반원형이다. 그리고 머리에 덮어 쓴다기보다는 매우 작은 크기로 머리 위에 얹은 후 좌우에 각각 두 가닥의 모자 끈을 달아 귀 아래에서 합하여 턱 아래에서 묶어 고정한 모습이다.

이에 신라나 백제 고분에서 출토된 절풍 형태의 모자 주1을 참고하면, 이는 반원형 판 2개가 좌우로 결합하여 모자를 이루는데, 반원형의 넓적한 면이 측면을 이루고 2개의 면이 결합되어 생성된 선이 앞뒤로 연결되며 정면에서는 밑변이 좁고 매우 뾰족한 삼각형 모양이 된다. 즉 벽화에 표현된 절풍의 모습은 정면이 아닌 측면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넓적한 모양이지만 정면의 모습에서 비로소 문자가 의미하는 '바람(風)을 가른다(折)' 는 '절풍(折風)'의 의미를 알 수 있다.

변천

『삼국지』에 따르면 3세기 고구려에서는 대가(大加)주부(主簿) 같은 고위 관리는 책(幘)을 착용한 반면 소가(小加)와 같은 하위 관리는 절풍을 착용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6세기에 이르러는 직위 고하에 따라 나뉘던 모자가 절풍 하나로 통일되면서, 절풍은 유관자(有官者)는 물론 일반인도 착용하게 되었다. 다만 새깃 장식의 유무로 신분을 구별하였다. 또한 절풍의 기본적인 소재는 가죽이지만 6세기에 일반인까지 절풍을 착용하면서 신분이 높은 사람의 경우 자(紫)색의 라(羅)직물과 금은을 장식하여 절풍에 변화를 주었고 이를 ‘ 소골(蘇骨)’이라 하여 명칭을 달리하게 되었다.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절풍 형태의 모자는 금, 금동, 은의 금속제 혹은 백화수피 즉 자작나무 껍질 등으로 제작되어 소재가 다양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신라는 고구려와 비교하면 좌우 2개의 판이 결합하여 정면에서 모두 좁은 이등변 삼각형을 이룬다는 것은 같지만, 측면에는 윗부분이 둥근 반원형 이외에 윗부분이 평평한 사다리꼴형도 존재한다. 다만 유물의 출토 사례를 볼 때 측면이 사다리꼴인 모자보다 반원형인 모자가 더 일반적으로 착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백제의 절풍형 모자는 기본 형태는 동일하지만 세부 장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신라나 고구려의 절풍은 앞부분에 사각형의 장식판을 부착하고 모자의 본체와 장식판 사이에 새깃을 끼워 장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백제는 출토 유물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모자의 전면, 후면, 측면에 모두 장식을 부착하며 이때 양쪽 측면 장식이 새의 날개 모양을 이룬다. 그리고 일부는 위쪽 부분에 수발이 있는 대롱 장식을 가하기도 한다.

고구려와 달리 절풍에 대한 기록이 없는 신라와 백제의 경우에는 시대 흐름에 따른 절풍형 모자의 변화가 명확하지는 않다. 다만 6세기 후반에 이르면 백제, 신라 모두 더 이상의 금속제 모자가 출토되지 않는다. 그리고 백제의 경우에는 철제 역삼각형의 관모 테와 은제 관 장식만 출토되고 있고, 신라의 경우에는 유물은 없지만 『삼국사기(三國史記)』에 특정 관직의 관모로 문양이 있는 비단이 사용된 ‘ 금관(錦冠)’, 소재는 명확하지 않지만 붉은 색상의 ‘비관(緋冠)’ 등이 보인다. 이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고구려에서 6세기에 자색의 라직물이 사용된 소골이 출현한 것과 같이 신라와 백제에서도 절풍형 모자에 직물이 사용되면서 직물의 종류와 모자 장식의 소재에 따라 신분을 드러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의의 및 평가

고깔 즉 삼각형 모자는 저고리, 바지의 의복과 함께 기원전부터 유라시아 대륙의 광활한 스텝 지역에서 유목, 기마 민족에게 착용된 공통 양식으로 우리나라 전역에서 착용되었다. 절풍은 삼국시대 확인되는 변형모 중 가장 대표적인 모자라고 할 수 있는데, 머리 위에 겨우 얹을 정도로 작은 크기의 모자로 매우 장식화된 모습이 특징적이다. 다른 지역의 변형모는 절풍처럼 두 장을 좌우로 맞대어 만들지만 머리를 넉넉하게 감싸며 양쪽 귀를 덮는 스타일이거나 또는 한 장의 부채꼴을 연결해 상대적으로 매우 뾰족하고 높은 원뿔형 스타일로 절풍과는 다르다. 그리고 삼국시대 절풍형 모자는 화려한 귀금속 소재와 함께 특정 색상이나 문양 직물을 사용하거나 새깃 장식을 부가하면서 착용자의 신분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지(三國志)』
『후한서(後漢書)』
『남사(南史)』
『북사(北史)』

단행본

김문자, 『한국복식사개론』(교문사, 2015)
『百濟의 冠』(국립공주박물관, 2011)
『신라황금』(국립경주박물관, 2001)
김원룡 편, 『(한국미술전집) 벽화』 4(동화출판공사, 1974)

논문

강순제·전형실, 「고깔형 관모에 관한 연구」(『복식』 52-1, 한국복식학회, 2002)
권준희, 「고구려와 신라의 절풍(折風)형 관모」(『韓服文化』 6-3, 한복문화학학회, 2003)
함순섭, 「考古資料를 통해 본 우리나라 古代의 冠」(『三國時代 裝身具와 社會相』, 제3회 부산광역시립박물관 복천분관 학술발표대회, 1999)
주석
주1

절풍은 고구려 관련 기록에 보이는 모자의 명칭이다. 백제, 신라 및 가야 고분에서 모두 출토되고 있는 절풍형태의 모자도 고구려와 동일하게 절풍으로 칭해졌을지는 알 수 없다. 이에 고구려 이외 지역에서 출토된 모자 유물은 절풍과 같은 삼각형 모양임에 근거하여 변형모(弁形帽)나 절풍형 모자, 혹은 고고학 일부에서는 모관(帽冠)이라 칭하기도 한다.

주2

무덤 안의 천장이나 벽면에 그려 놓은 벽화.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2)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