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정봉수(鄭鳳壽)

조선시대사인물

 조선시대 전라도병마절도사, 동지중추부사, 훈련도정 등을 역임한 무신.   의병장.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정봉수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조선시대 전라도병마절도사, 동지중추부사, 훈련도정 등을 역임한 무신.의병장.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상수(祥叟). 아버지는 충무위부사과(忠武衛副司果) 정양년(鄭陽年)이고, 어머니는 충주 김씨(忠州金氏)로 선략장군(宣略將軍) 김연(金淵)의 딸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하던 공부를 포기하고 무과에 급제, 선전관이 되어 왕을 호종(扈從)하여 부장(部將)이 되었다. 이후,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감찰·영산현감을 지냈다. 1605년(선조 38) 무안현대장으로 흑산도 앞 바다에 침입한 왜구를 참획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에 추대되어 4,000여 명의 의병을 모집, 출신(出身) 김종민(金宗敏)을 중군(中軍)으로 삼고 미곶첨사(彌串僉使) 장사준(張士俊)·이광립(李光立) 등과 함께 정예병을 양성하며 정세를 관망하고 있었다.
이 때 용골산성(龍骨山城)에는 철산(鐵山)·의주 등지의 피난민이 모여 있었다. 이에, 조정에서는 고립된 이 성을 지킬 수 없다 하여 평안도관찰사에게 난민들을 산 속으로 피신하게 하고 전멸의 화를 입지 않게 종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봉수 등이 이 성을 고수할 것을 결의하자 조정에서 그에게 당상계(堂上階)를 주어 전군을 지휘하게 하였다.
그는 적에게 투항한 장사준 등을 참수하고 적의 침입에 대처하였다. 용골산성에서 많은 후금군을 살해하고 포로가 된 수천 명의 백성을 구출, 그 공으로 철산부사가 되었다.
이어 가선계(嘉善階)에 올라 용천부사 겸 조방장(龍川府使兼助防將)이 되었다. 곧 방어사(防禦使)와 의주부윤을 겸직하고, 적이 철수한 뒤 구성부사·개천군수·오위장이 되었다.
1630년 부총관으로 전라좌수사에 특제(特除)되었고, 이듬해 경상도병마절도사가 되어 가의대부(嘉義大夫)로 승계하였다. 이어 청북방어사(淸北防禦使)가 되었으며, 1634년 전라도병마절도사, 이듬해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부총관 겸 훈련도정을 역임하였다. 철산의 충무사(忠武祠)에 제향되었으며, 시호는 양무(襄武)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8년)
이장희
영역닫기영역열기 관련 멀티미디어 (1)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