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서산(瑞山). 자는 덕혼(德渾), 호는 금월헌(琴月軒). 정희(鄭僖)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언우(鄭彦佑)이고, 아버지는 정건(鄭健)이며, 대북의 영수 정인홍(鄭仁弘)의 동생이다.
1588년(선조 21) 진사시에 합격하고 오랫동안 학업을 계속하였다. 1601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형조좌랑에 특별히 임용되고, 이어 이듬해는 병조정랑을 역임하였다. 그런데 당시의 정계는 붕당 사이의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다.
이 때 그는 종형인 인홍의 처사를 못마땅히 여겨 비판, 상소하니, 이후 그는 반대당파에 의하여 수시로 탄핵을 받고 견제를 당하였다. 그리하여 1602년 병조정랑에서 파직되었다가 1604년 복직되었으나 곧 영덕현령으로 좌천되었다.
일찍이 1592년 임진왜란 때는 합천에서 곽재우(郭再祐)와 더불어 의병을 일으켜 왜적토벌에 힘썼고, 선조가 의주로 피난하자 어가를 호종하였다. 이에 그 충의가 가상히 여겨져 호종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 광해군이 즉위하여 정치가 문란해지고, 또 인홍과의 갈등으로 벼슬을 버리고 향리인 합천에 은거하여 여생을 보냈다. 인조 때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