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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목차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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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華城堤岩里三一運動殉國遺蹟)

    근대사문화재 | 유적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에 있는 일제강점기 3·1독립만세운동 관련 순교지.   순국선열유적. 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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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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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에 있는 일제강점기 3·1독립만세운동 관련 순교지.순국선열유적. 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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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사적 제299호. 3·1독립만세운동 당시 일본 헌병이 제암리(두렁바위) 기독교 주민 23명을 집단으로 학살한 만행사건의 유적지를 일컫는다.
    영역닫기영역열기역사적 배경
    제암리에 교회가 건립된 것은 1905년 8월 5일이다.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퍼져나가자, 제암교회 청년들은 4월 5일 발안장날에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든 시간에 교회 청년들이 발안주재소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자, 장터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이 독립만세를 따라 외쳤다.
    이에 당황한 일본 경찰이 무력으로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가혹하게 매질을 하여 많은 청년들이 상처를 입고 마을로 돌아왔다. 그러나 청년들이 밤마다 제암리 뒷산에 올라 봉화를 올림으로써 지역 주민들의 만세운동은 계속되었다. 발안장날 만세운동이 있고 열흘 후인 4월 15일 오후 2시, 일본 경찰의 계획된 음모가 시작되었다.
    수원에 주둔하고 있던 보병 제78연대 소속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 중위 등 일본 헌병 30명이 몰려와, 발안장날 너무 심한 매질을 하여 사과하고자 왔으니 15세 이상의 남자 신도들은 교회에 모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21명의 신도가 모이자 헌병들이 밖으로 나가 교회 출입문에 못질을 하고 석유를 뿌린 다음 불을 질렀다.
    헌병들은 교회를 포위한 채 교회를 향해 총을 쏘았고, 삽시간에 교회 건물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그들은 무참히 죽어가는 남편을 살려 달라고 교회 앞에서 애원하는 두 아낙의 목을 베어 볏짚으로 불을 놓기까지 하였다.
    만행을 저지른 헌병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민가에 불을 질러, 외딴집 한 채만 남고 32가구의 초가가 모두 불탔다. 멀리 오산에서도 그 불길이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난 지 며칠이 지나도록 일본 헌병들의 감시가 심해 누구도 희생자의 유해를 찾아내어 장례를 치를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4월 17일 이 사건을 전해 들은 캐나다 의료선교사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石好必) 박사가 엉클어진 유골들을 들것에 실어 2㎞ 정도 떨어진 향남읍 도이리 공동묘지 입구에 안장하였다. 그러나 그 뒤 이곳은 산림청 임목육종연구소 채종포지가 되어 지형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82년 9월 문화공보부의 민족수난현장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이 사건의 목격자이며 유일한 미망인인 전동례의 증언과 최응식의 도움을 받아 이 일대 1, 300평에 대한 유해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이 조사에서 희생자들이 가지고 있던 다이쇼8년명[大正八年銘] 1전짜리 동전, 호주머니칼, 인장통, 조끼단추, 마고자단추, 램프걸이, 구부러진 못, 불탄 숯, 화염병으로 사용되었던 기린맥주병 조각 등과 함께 여덟 군데에서 집중적으로 유해가 나타났다.
    이들 유골은 유족의 입회하에 모두 대형관에 입관되어 1982년 9월 29일, 사건시간인 오후 2시에 경기도 주관으로 합동장례식을 치르고 제암교회 뒤편에 마련된 합동묘지에 안장하였다. 그리고 순국선열로 추서, 이 주변을 사적 제299호로 지정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현황
    묘지의 남쪽에는 제암교회에 붙은 기념관이 있는데, 이 기념관 벽면에는 그 날의 참상을 그린 3폭의 기록화와 외국 언론사들의 보도내용이 있고, 유해발굴조사시의 사진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내부 진열대에는 유해발굴조사 시 출토되었던 유물들이 그대로 진열되어 그 날의 참상을 되새길 수 있는 역사적인 자료가 되고 있으며, 교회 입구에 기념비가 서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7년)
    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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