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광문회 ()

신자전 / 조선광문회
신자전 / 조선광문회
근대사
단체
1910년서울에 설립되었던 한국고전간행단체.
이칭
이칭
광문회
정의
1910년서울에 설립되었던 한국고전간행단체.
개설

최남선(崔南善) 등이 고문헌의 보존과 반포, 고문화의 선양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1907년 이래 최남선은 출판사업을 통한 민족의 계몽과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신문관(新文館)을 창설, 『대한역사』·『대한지지(大韓地誌)』·『외국지지』 등의 도서와 잡지 『소년』을 발간하였다.

설립목적

1910년 일제는 조선을 강점한 후 해마다 진귀한 서적과 국보급 문화재를 반출하였다. 이에 충격을 받고 민족전통의 계승을 위한 고전 간행 및 보급운동의 필요성을 느꼈다. 최남선·현채(玄采)·박은식(朴殷植) 등은 조선광문회를 조직하였다. 조선광문회는 고전을 간행, 귀중 문서의 수집·편찬·개간을 통한 보존·전파를 목적으로 하였다.

기능과 역할

그 방법으로 명가·명저를 최단시일에 가장 싼 값으로 구입해 인쇄하고, 가입회원에게는 실비로 배포하려고 하였다. 간행도서의 범위는 조선의 사기·지지는 물론, 전장(典章)·헌모(憲謨)·가사·시문·경전·병사(兵事)·민업(民業)·교학·예술·풍속·전기·화상(畫像)·지도 등이었다.

이에 따라 제1회사업에서 『동국통감』·『동사강목』·『삼국사기』·『삼국유사』·『발해고(渤海攷)』 등의 역사류, 『택리지』·『산수경(山水經)』·『도리표(道里表)』 등 지리류, 『동국세시기』·『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 등 풍토류, 『동언해(東言解)』·『훈몽자회(訓蒙字會)』·『아언각비(雅言覺非)』 등 어운류(語韻類), 『용비어천가』·『산림경제』·『지봉유설』·『성호사설』·『열하일기』 등의 고전, 『익재난고(益齋亂稿)』·『율곡전서』·『이충무공전서』·『매월당집(梅月堂集)』 등의 전집류를 간행하였다.

복간사업의 주요 실무자는 장지연(張志淵)·유근(柳瑾)·이인승(李寅承)·김교헌(金敎獻) 등이었다. 이들은 수사(修史)·이언(理言)·입학(立學)의 3대 기치 아래 180여 종의 고전간행을 계획했으나 20종밖에 간행하지 못하였다.

또한 주시경(周時經)·권덕규(權悳奎)·이규영(李奎榮) 등은 우리 나라 최초의 국어사전 편찬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 일을 마치지 못하고 1927년 원고를 계명구락부(啓明俱樂部)에 넘겨 주었고, 그것은 다시 조선어학연구회로 넘어갔다.

또 유근·이인승 등이 『신자전(新字典)』을 간행하였다.

의의와 평가

광문회는 일제의 지배 하에서도 민족정신과 슬기가 담긴 고전을 간행해 민족의식을 고취한 공이 크다.

참고문헌

『최남선전집(崔南善全集)』
『일제하(日帝下)의 문화운동사(文化運動史)』(조용만 外, 고려대학교아세아문제연구소, 1982)
『개화기(開化期)의 국문연구(國文硏究)』(이기문, 일조각,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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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이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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