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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으로 주조한 타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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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금속으로 주조한 타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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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종(樂鐘) · 시종(時鐘) · 경종(警鐘) · 범종(梵鐘) 등 그 범위가 넓다. 그러나 우리 나라 민족문화의 소산물로서 종이라 일컬을 때에는 범종을 말한다. 범종은 일반적으로 동종(銅鐘)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중국과 같은 나라는 철제종(鐵製鐘)이 많은 데 비하여 우리 나라는 모두 청동(靑銅)으로 주조하였기 때문이다. 현재는 범종이 주종을 이루지만 종의 범위는 상당히 넓다.

≪고금악록 古今樂錄≫을 보면 여섯 가지로 나타난다. “무릇 쇠로 만든 악기가 여섯이 있는데 모두 종에 속한다. 종(鐘) · 순(錞) · 탁(鐲) · 박(鎛) · 요(鐃) · 탁(鐸) 등이 그것이다.” 이밖에도 편종(編鐘) · 특종(特鐘) · 영(鈴) 등을 더 포함시킬 수 있다. 이것을 편의상 다음의 셋으로 나누어 그것의 상징적 의미를 살펴본다. ① 방울: 큰방울[鐸] · 작은방울[鈴], ② 범종(梵鍾), ③ 악종(樂鐘):편종 · 특종 · 순 · 요 · 박 · 탁 · 탁 · 경(磬).

우리나라 종 가운데 가장 일찍 선을 보인 것은 큰 방울[鐸]이다. 1960년대 초에 대전 괴정동에서 동(銅)으로 만들어진 큰 방울이 거울 · 칼과 함께 발굴되었다. 그것의 제작연대는 서기전 4세기로 추정되어 청동기시대 이후에도 큰 방울이 줄곧 만들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방울에 대한 기록은 중국의 사서(史書)인 ≪삼국지≫ · ≪후한서≫ · ≪진서≫ 등의 <마한전> 에 방울에 대한 단편적인 기록이 보일 뿐이다. 이들 사서에는 다같이 “마한의 각 고을에는 소도(蘇塗)라는 것이 있는데, 그곳에는 큰 나무를 세워두고 그 위에다 작은 방울[鈴]과 북을 달아놓고 귀신을 섬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삼국지≫ 마한조에는 “마한 사람들은 5월에 파종을 마치고는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술과 음식을 마시고 먹으면서 춤을 춘다. 그런데 그 춤추는 모습이 흡사 큰 방울을 흔들면서 추는 탁무(鐸舞)와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중국 역사서에 작은 방울과 큰 방울에 관한 기록이 일부 남아 있다.

그런데 큰 방울이 출토된 대전 땅은 후에 마한의 한 지역이 되었다. 바로 그 땅에서 제사가 행하여지고 방울을 흔들면서 춤추는 잔치와 굿이 벌어졌던 것이다. 중국 역사서에는 한반도의 북쪽 땅인 예(濊) · 부여 · 고구려 등 여러 부족들의 제사에 관한 기록도 있지만 아쉽게도 방울에 대한 기술은 보이지 않는다.

소도는 물론 신이 내리고 오르는 신역(神域)이요 제단이며, 거기에 세워진 나무는 신간(神杆 또는 神竿)의 성격을 가진 성물(聖物)이다. 그리고 거기에 오르내리는 신은 그 땅의 부족들의 생명과 재산과 풍요를 지켜 주는 수호신이다.

그러므로 파종을 마친 5월이나 가을 추수기에는 수호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그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잔치도 있게 되고, 사람과 귀신 사이에 굿판도 벌어졌다. 그런데 사람과 귀신 사이에 벌어진 굿판에는 귀신을 즐겁게 만들고 달래는 일이 큰일이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노래와 춤이 동원되고 그 굿판을 흥분과 황홀경에 젖어들게 함으로써 귀신을 움직이기 위하여서는 악기가 필요하였는데, 그것이 방울과 북이었다. 악기가 사람과 귀신을 흥분시키고 움직이게 하며, 나아가서는 자연현상까지 변화하게 하는 성구(聖具)라는 믿음은 우리 민족에게도 일찍부터 발달하였다. 적을 물리치고 병을 낫게 하고 비를 오게도 하고 개게도 하며, 파도를 잠재우기도 하였던 <만파식적설화 萬波息笛說話>는 그것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무교(巫敎)를 절대시하고 그 밑에서 집단을 영위하였던 원시인들로서는 굿이 최대의 행사였다. 그러기에 동(銅)을 다룰 수 있는 문화가 열리게 되자 무엇보다도 먼저 신과 관련된 방울 · 칼 · 거울 등의 성구를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대전 괴정동에서 방울 · 칼 · 거울 등이 함께 출토된 것도 흥미롭지만 오늘날까지도 무당의 춤에 방울 · 칼 · 거울이 가장 귀중한 무구로 사용되고 있음은 여러 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날 무당춤에 사용되는 방울은 대개 일곱 개를 짧은 막대기에다 매달아 흔드는 것이 보통이다. 이것을 칠금령(七金鈴)이라 한다. 그리고 방울은 흔들어서 소리를 내는 것이 보통이지만, 박수의 경우 방울을 쳐서 소리를 내면서 독경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불교의 독경법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렇게 방울은 서기전 4세기부터 출현하여 무교에서 성구로 여겨져 왔다. 그것이 또 오늘날의 무당굿에 이어진 것이다. 결국 방울은 무교문화(巫敎文化)의 상징물이다. 그 방울소리는 신의 음성이기도 하고 신을 즐겁게 만드는 악기이기도 하며, 악신(惡神)을 몰아내고 선신(善神)을 맞아들이는 성구였던 것이다.

범종은 방울보다 늦게 등장하였다. 최초의 범종은 상원사동종으로 보고되었는데, 이것은 725년(성덕왕 24)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 46년 뒤인 771년(혜공왕 7)에는 사상 최대의 걸작인 성덕대왕신종이 탄생하였다.

방울이 무교의 상징물이라면 범종은 불교의 상징물이다. 그리고 방울이 씨족이나 부족집단의 산물이라면 범종은 강력한 왕권전제국가의 산물이다. 그러기에 그 크기에 있어서도 종은 방울과는 비교도 안되게 우람할 뿐만 아니라, 그것의 상징적 의미도 훨씬 심원하고 철학적이다.

그렇다면 종과 종소리가 상징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에 대하여서는 성덕대왕신종명의 머리글이 좋은 시사를 주고 있다.

“지도(至道)는 형상 밖에 포함되어 있어 그것을 보려 하여도 그 대원(大原)은 볼 수 없고, 대음(大音)은 천지에 진동하나 그것을 들으려 하여도 들을 수가 없다. 그러한 까닭에 가설(假說)을 의지하여 삼진(三眞)의 오(奧)를 보고, 신종(神鐘)을 걸어서 일승(一乘)의 원음을 깨닫는다.” 실로 범종은 지도와 대음을 깨닫게 하는 장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종명(鐘銘)은 지도나 대음은 지극히 높고 깊어서 깨달을 수도 들을 수도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그것은 가설이나 종소리를 통하면 깨달을 수 있고 들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종소리를 통하여 어떻게 그것을 깨달을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종소리와 대음을 상대적이거나 직선적인 관계에서가 아니라 포괄적이요 둥근 고리[環] 관계에서 파악하면 가능하여지는 것이다.

종소리와 대음을 직선적인 관계에서 보면 서로가 연관이 없는 별개의 것으로 느껴지지만, 양자를 둥근 고리 관계로 묶어서 생각하게 되면 그 양자는 둘인 듯하면서도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하나인 듯하면서도 둘로 모습을 드러낸다. 곧, 대음 없이는 종소리도 있을 수 없지만 종소리가 없다면 대음도 발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리 관계에서는 한 쪽만 잘 파악하면 다른 한 쪽은 저절로 파악된다. 곧, 종소리만 잘 들을 줄 알면 대음은 저절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종명의 논리요, 종을 만들어서 걸게 된 이유이다.

범종은 이러한 것이기 때문에 종을 만들어서 부처님의 진리나 자비를 담아서 온 누리에 퍼지게도 하고, 역사에 기록될 만한 대왕(大王)의 공덕과 위업을 종에다 담아 그것을 국토에 퍼지게 하여 호국의 수단으로 삼기도 하였으며, 중생들은 부처에게 종을 만들어 시주함으로써 소원을 빌기도 하였던 것이다. 결국, 종소리야말로 높은 세계의 뜻을 아래로 하달할 수도 있고, 아래 세계의 뜻을 높은 세계로 상달할 수도 있는 신구(神具)였던 것이다.

그러면 종명을 통하여 그러한 모습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는 부처님의 진리와 자비를 담아서 호국사상을 고취하는 경우이다. 그것은 연복사종명(演福寺鐘銘)이 좋은 예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처님의 말씀은 심히 깊도다. 지하에는 지옥이 있어 침침하여 만생만사(萬生萬死)의 고난을 감당하기가 어려워 취한 듯 꿈꾸는 듯 귀가 먹은 듯 벙어리가 된 듯하네. 한 번 종소리를 들으니 모두가 마음을 깨고 왕성(王城)이 연복(演福)으로 가득하네. 한 번 종이 울리니 남염(南閻)에 진동하고 하늘에 솟구치고 유음(幽陰)에 스미니 모두가 복을 받아 천자는 만년토록 다수남(多壽男)하고 나라는 국위를 펼치도다.”

둘째는 대왕의 공덕을 종에다 담아서 호국을 꾀하려는 경우이다. 이것은 앞에 선보인 성덕대왕신종명을 들 수 있다. “이 종소리로 인하여 나라에는 충신이나 어진 이가 등용되고, 예(禮)와 악(樂)을 숭상하여 농사에 힘쓰고, 사치가 없으며 태평성대하고 평화로운 정치가 행하여질 것이다.” 성덕왕은 실제로 치적이 탁월한 대왕이었다. 그러므로 대왕의 공덕과 위업을 종에 담아서 영원히 그것이 나라와 민족에 지속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셋째는 일반 중생들이 종을 만들어서 발원한 것이 있다. 여기에는 특별히 종명은 없으나 종을 주조한 날짜와 근량(斤量), 그리고 발원자(發願者)의 성명을 기록하였다. 이것도 종에다 발원을 담아서 종을 치게 되면 그 발원이 부처에게 상달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현존하는 범종의 수는 고려 말기까지의 것으로 대략 40여 개가 있는데, 대개 이러한 발원을 담은 것이 많다. 물론 종의 기능이 시보(時報)의 역할을 하였던 것은 사실이나 몇몇 종명에 나타난 내용을 분석하여 보면 위에 설명한 상징적 의미가 본령이었던 것이다.

악종은 이름 그대로 음악에 소요되는 악기로서의 기능을 가진다. 방울과 범종을 무교나 불교 같은 종교와 관련짓는다면, 악종은 유교의 예악사상(禮樂思想)과 관련지을 수 있다. 특히, 조선 전기는 불교가 배척되고 유교의 예악사상이 고취되던 때였다. 그래서 음악이론도 정비되고 악기도 정비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예악사상에서는 악기를 연주함으로써 신을 즐겁게 만든다거나 종교적 발원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음악을 들려줌으로써 사람들의 성정을 순수하게 하고, 성정이 순수하게 되면 도덕이 순화되고, 도덕이 순화되면 정치가 잘될 수 있다는 지극히 효용적인 사상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그래서 권근(權近)은 여러 가지 국기(國基)를 바로잡는 일 가운데에서도 음악을 바로잡는 일을 잊지 않았다. 그는 <악기편 樂器篇>을 중심으로 ≪천견록 淺見錄≫을 쓸 정도였다. 다음의 언급도 퍽 주목할 만한 것이다. “음악은 천지의 화(和)요, 예(禮)는 천지의 본(本)이라 함은 예악이 천지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천지는 곧 하나의 예악이고 예악은 곧 하나의 천지이다.” 이렇게 예악을 천지와 같은 것으로 보고 또, 천지 차원에서 인륜을 수립한다고 하였던 것이다.

정도전(鄭道傳)은 또 “음악이란 성정(性情)의 바름에서 근본한다. "고 하였다. 음악은 성정을 바르게 할뿐만 아니라 바른 성정이라야 좋은 음악이 나올 수 있다는 논리이다. 또, ≪악학궤범≫ 서(序)에서는 "음악은 정치와 큰 관계를 가진다.”고도 하였다. 이렇게 음악을 인성과 도덕과 정치 순화와 같은 효용성에 두었던 것이 예악사상의 근본이었다.

특히, 세종은 악기 전반을 정비하게 하였는데, 그중에서도 종류(鐘類)인 편종 · 특종 · 순 · 요 · 탁 · 탁 · 경 등을 정비하였다. 악기만 정비한 것이 아니라 격법(擊法)이나 협연(協演)하는 법도 명시하였다.

≪증보문헌비고≫의 악고(樂考)에 보면 악종을 연구한 법이 나온다. “문무(文舞)가 물러나고 무무(武舞)가 등장하면 악생(樂生)은 두 손으로 철영(鐵纓)을 잡아 순을 흔들면서 들어와 무인(舞人)의 오른편에 선다. 그러다가 아악(雅樂)이 세 번 울리고 무인이 몸을 돌리면 또 순을 울리는데, 아악이 네 번째 울리면 그친다. 탁(鐲)이나 요(鐃)도 쓰임새가 이러하다. 탁과 요는 왼손으로 그 손잡이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추를 들어 이것을 치며, 탁(鐸)의 경우는 양손으로 손잡이를 들어서 흔든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예악사상에서는 이들 악기를 어떻게 만들면 좋은 음이 날 수 있고, 어떻게 협연을 하면 조화를 이루며, 이것이 마침내는 천지와 조화를 이루어서 인간의 성정을 도야하고 도덕적으로 순화되며 바른 정치에 이바지할 수 있는가 하는 데 악종의 상징적 의미를 두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한국의 금속공예』(이호관, 문예출판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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